"일상은 일흔살 답게, 소설은 점점 위험하게 가자는 생각입니다." "나이 들면 존경받고 사랑받는 작가가 돼야지 했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사랑`없는 `존경`보다 `존경`없는 `사랑`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섹시하게 늙어가고 싶어요." `은교` `촐라체`의 `청년작가` 박범신(68)이 새 소설을 펴냈다. `소소(昭昭)`시를 배경으로 한 남자 `ㄴ`과 두 여자 `ㄱ` `ㄷ`이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 `소소한 풍경`이다. `강력한 논리의 서사를 벗어나면서 작가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소설은 시작됐다. 등장인물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ㄱ` `ㄴ` `ㄷ`으로 처리한 것도 "편협한 리얼리티를 피하기" 위한 작가의 실험이다. "평범한 방식의 소설은 아닙니다. 사람 본성의 밑바닥에서 물방울처럼 올라오는 것들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이야기와 이야기를 논리로 연결하기보다는 알 수 없지만 우리를 강력하게 장악하는 생의 밑바닥의 본질 같은 이미지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부모를 잃은 남자, 목숨을 걸고 탈북한 여자 등 캐릭터의 배경도 애초 기획했던 바가 아니다. "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죽음을 많이 통과해 온 사람이란 공통점이 필요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젊은 나이에 생의 본질을 빨리 이해했다는 부분을 설명하기 어려웠다"는 이유에서다. "제가 지금까지 배워온 소설의 구조에서 스스로 자유스러워지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완전히 자유로워 지면 쓸 수가 없었어요."소설 속 인물들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남녀의 삼각관계` 틀 밖에 있다. `소소한 풍경`은 한 남자가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야기도, 한 여자가 남자와 다른 여자 사이에서 번민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소설에는 본질적으로 사랑하며 사랑받는 자, 오직 둘만 있다. "예전에는 `사랑은 고유명사`라고 쓴 적이 있었죠. 하지만 요즘에는 이 말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일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강력한 억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일대일 관계가 부자연스럽다는 게 소설을 쓰게 된 모티프 중 하나입니다. 다자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게 슬플 수 있겠지만 더 자연스럽다고 봤어요." 사랑에 대한 갈망은 `둘` `셋` 등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봤다. 박범신은 현실에서 요원한 `덩어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을 썼다. 그래서 그는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나의 로망에 대해 썼다"고 말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건 성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어쩌면 불멸의 욕망이죠. `덩어리`란 말 속에는 불멸에 대한 탐욕이 있습니다. `섹스`라는 말로 이들을 묘사하는 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덩어리`라고 표현했어요."세월호 침몰 참사라는 비극 앞에 "나도 유죄"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던 박범신은 "심지어 소설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문학의 심지로 가려는 경향이 짙어진다"는 말은 고민의 결과로 읽힌다. "비밀스러운 인간의 본질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쓸지, 위기감도 있어요. 동어반복이거나 지난 소설보다 형편없다는 말을 들으면 은퇴하려고 해요. 이번 소설이 `은퇴`에 해당하는 소설이 아니길 바랍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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