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 들어서면 포유류의 원초적인 호흡을 연상시키는 불편한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갑각류를 떠올리는 거대한 물고기에서 나오는 소리다. 견고한 철제 비늘로 뒤덮인 이 물고기는 얼굴을 벽에 처박고 있다. 비대한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물고기의 울부짖음은 채워도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돌아보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다리가 묶인 사면상도 주목된다. 현대인들의 과도하게 왜곡된 욕정과 그로 말미암은 병리 현상을 표현한 작품이다.이 공간에는 ‘표류자’와 ‘피를 쥐고 있는 소녀’ ‘버터플라이’가 등장한다. 물고기는 주변 인물들의 피와 꿈이라는 유기질, 희망을 빨아먹고 사는 일종의 흡혈귀다. 물고기에게 희망을 빼앗긴 ‘표류자’는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전시실 입구에는 발가벗은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버터플라이’가 전시됐다. 비쩍 마른 등에는 기다랗고 처참하게 갈라진 틈이 보인다. 작품은 변태한 나비의 빈 껍질과도 같이 공허하고 퀭한 모습이다.전시장 중앙에는 푸른색 비옷을 걸친 ‘피를 쥐고 있는 소녀’가 서 있다.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에 갇힌 듯 애절한 표정이다. 꽉 쥔 왼주먹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이는 깊은 상처와 복수의 감정을 동시에 상징한다. 다른 인물상과는 달리 발가벗겨진 모습이 아닌 이 소녀에게 우비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유일한 방어기제이자 보호막이다.2전시실에 들어서면 노시보 효과를 모티프로 제작, 연출한 ‘언어의 숲’이라는 이중의 잔혹극이 펼쳐진다. 겁에 질린 듯 웅크린 채 얼굴을 가린 벌거벗은 거인이 여인과 마주하고 있다. 여인도 벌거벗은 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사로잡고자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다. 이 여인의 거짓된 유혹으로 억울하게도 저주를 받게 된 남성은 몸이 계속 커지고 돌처럼 굳어진다. 3전시실에는 1전시실에서 봤던 사면상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면상들은 현대사회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거나 분명하게 보이는 끈, 연결고리, 관계 등을 들춰낸다. 인물들의 다리 발목 부분을 단단히 포박한 것은 필요악과도 같은 억압적 관계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다.마지막 4전시실에는 서커스 공연을 연상시키는 천막 속에서 벌어지는 축제 형식으로 연출한 ‘순환(Circle)’이 설치됐다. 조에트로프라는 영화의 초기방식을 원용했다. 작품상단의 ‘시스템 지배자’들은 청기, 백기, 황기를 번갈아 들면서 타인과의 경쟁을 부추긴다. 청백기가 우열을 가르는 기준 깃발이라면 황색기는 자신들의 수직적 시스템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의미다. 이들의 모습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들의 모습을 결합한 일종의 아상블라주 조각이다.기괴한 감시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시스템 관리자’, 명품 브랜드 벽 앞에 서서 명품 속옷을 자랑하듯 내보이며 캉캉을 추고 있는 ‘시스템의 향유자’, 망치를 들고 브랜드 벽을 파괴하려는 최하단의 ‘시스템 파괴자’ 등 4단으로 구성됐다.‘2013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수상 기념전으로 임승천(41)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네 가지 언어’라는 제목으로 일종의 옴니버스식으로 꾸몄다. 작업은 텍스트와 함께 이뤄진다. 그러나 이미지 중심의 연출로 관객의 몰입도와 집중력을 우선 고려했다.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고자 부분적으로 핀 조명을 사용했다.박천남 학예연구실장은 “임승천의 작업은 대부분이 그러했듯 모두 가설이다. 짧지만 플롯이 분명하고 탄탄한 단편소설을 보는 듯하다. 밀도 높은 상상력과 독일 표현주의영화에서 경험할 수 있는 관객반응 중심의 연출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7월27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02-737-7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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