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박현수(47)의 추상회화는 빛에서 시작한다. 빛을 주로 빨강·파랑·노랑 삼원색으로 변주해놓는다. 그가 만들어낸 빛은 우주공간을 연상케 한다. 종교적 색채도 느껴진다. 작업 과정은 흘리고(드리핑) 파내는(디깅) 기법으로 이뤄진다. 물감을 흘리고 뿌린 뒤 단색조 물감으로 덮는 식이다. 이후 물감이 마르기 전 긁어낸다. 긁어낸 자리의 형태는 비정형이다. 우주를 떠도는 운석 같기도 하고 숫자나 한글의 자모음 같기도 하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의 기억 속에 저장된 자신만의 언어다. 파내기는 매일 매일 일기를 쓰듯이 해댔다. 기하학적 모양은 그날의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결과물에서는 그때의 감정이 없어지고 규모와 실체, 그리고 그림자만 남게 된다.박현수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 작품을 걸었다.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에 주목한 신작 10여 점을 걸었다. 그림자에 대한 관찰을 대형화면에 확장하는 방법으로 빛과 에너지 탐구를 보여주는 전시다.그가 만든 그림자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보이지만, 시선을 멀리하면 원으로 환원된다. 작가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집도 사람도 나무도 작은 점으로 보이는 것처럼 시야가 희미해지지만, 남는 본질은 결국 원”이라고 설명했다.1층 전시장에는 일기를 쓰는 심정으로 제작한 검은 종이에 기하학적으로 커팅한 작업이 걸려있다. 커팅된 모양은 다른 그림에서 스퀴지로 긁어내 만든 이미지와 다르지 않다. ‘섀도’ 시리즈와 ‘커팅’ 시리즈가 별개이면서도 중첩되는 미묘한 지점에 맞닿아 있다. 전시는 6월10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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