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이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내년 4월17일까지 박물관 상설전시장 3층 가족 전시코너에서 ‘영천 이씨 농암 이현보의 가족 이야기’ 전을 연다.조상의 유업을 이어가고자 사회적 실천인 적선(積善)과 가정의 효도인 애일(愛日)을 실천한 농암(聾巖) 이현보(1467~1555)의 가족 이야기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영천이씨 농암종택의 기탁자료를 중심으로 했다.이현보는 과거시험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에 내려가 살기를 원했다. 또 어버이를 가까이 모시고자 고향 근처 안동과 영천 등지에서 근무하거나 휴가 때마다 고향에 내려왔다. 만년에 고향으로 온 그는 전래 어부가의 순서가 뒤섞이고 내용이 중복됨을 알고 이황(1501?1570)과 의견을 나누면서 이를 고쳐 1549년(명종 4) 83세에 새 어부가를 완성했다.전시장에는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며 자연의 흥취를 즐기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분강어부가(汾江漁父歌)’ 목판을 비롯해 보물 제872호 ‘농암 이현보 영정’, 영정에 보이는 금서대(金犀帶)와 옥관자(玉貫子) 등 유품 등이 있다.영천이씨는 이문한을 시조로 하지만, 이현보는 그 세대가 너무 멀어서 영양군 이대영을 중시조로 한다. 예안 분천에 처음 거주한 이헌을 입향조로 한다. 그는 고조부 이헌이 지은 집을 중수하면서 조상의 유업을 길이 이어가겠다는 뜻의 ‘긍구당’이란 당호를 걸고 조상의 적선을 실천했다.영천자(靈川子) 신잠(1491~1554)의 글씨로 알려진 긍구당 현판과 그의 다섯 아들과 족질 이황, 손녀사위 황준량(1517?1563)의 시가 새겨진 긍구당 시판(詩板) 등도 전시됐다.이현보는 연로한 어버이를 위해 농암바위 위에 ‘날을 아껴 효도하겠다’는 뜻의 ‘애일당’을 짓고 명절마다 이곳에서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출 정도로 효성이 가득했다. 인근 노인들까지 모셔 잔치를 베푸는 구로회(九老會)도 열었다.이러한 적선과 애일을 실천한 덕분인지, 농암가문은 이현보를 중심으로 그의 나이 89세, 아버지 이흠 98세, 아들 이문량 84세, 이희량 65세, 이중량 79세, 이계량 83세, 이윤량 74세, 이숙량 74세 등 평균 80세가 넘는 등 대대로 장수했다.농암의 효행으로 선조가 농암 가문에 ‘적선’이라는 큰 글자를 하사했고 효친과 경로사상은 농암종택 500년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분천의 종택과 애일당이 그려진 보물 제1202호 ‘애일당구경첩’의 ‘분천헌연도(汾川獻宴圖)’, 애일당을 장식했던 6개의 현판 등도 볼 수 있다.농암선생문집 책판 90판 전질과 농암 이현보와 퇴계 이황 등 명사들이 주고받은 시문을 새긴 긍구당·애일당 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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