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21세의 여자올시다. 이미 남의 아내 된 지 4년, 또한 자식이 둘씩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남편에게는 멀쩡한 본처와 자식이 오남매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안 저는 참 기가 막힙니다. 이제 와서 아니 살자니 천덕구니 자식 볼 생각에 불쌍해 못 견디겠고, 서로 헤어지기는 매우 곤란한데 세상에 이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선생님, 아니 살아야 옳을까요, 그대로 살아야 할까요?” (66쪽)1930년대 신문 독자상담 코너에는 뜨거운 고민들이 몰려들었다. 남녀 문제, 가정 문제가 특히 많았다. 근대와 전근대가 착종하던 1930년대는 ‘성 윤리의 아노미 시대’라 할 만큼 혼란했다. 마마보이, 폭력 남편, 바람둥이 등이 그 틈을 비집고 기승을 부렸다. 근대 조선의 살인 사건과 스캔들을 문화사적으로 조명한 `경성기담`으로 주목 받은 전봉관(43) KAIST 인문사회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같은 시기의 사생활에 천착한 ‘경성 고민상담소’를 펴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자유연애의 도입으로 막 사랑에 눈뜬 근대인들은 전근대 가족 윤리와 끓어오르는 연애 감정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잦은 폭력으로 병상에 누운 아내를 강제 퇴원시키고 그 돈으로 오입질하는 남편, 처제를 임신시키고도 자살하라 명하는 뻔뻔한 형부, 관계하고 나니 재미가 적어졌다며 약혼을 해소하려 드는 파렴치한이 판치는 시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전 교수는 이 혼란의 시대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로 이때 지금 우리의 사생활을 규정하는 가족 문화와 성 윤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수백년 간 이어졌던 조혼의 병폐가 공론화됐다.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의 해법으로 이혼이 제시됐으며, 양육비나 위자료 같은 개념이 생겨난 것도 이즈음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가혹한 시집살이와 고부 갈등은 지금도 가정불화의 주요 원인이고, 성차별적인 정조 관념 역시 잔존해 있다. 전 교수는 개인의 사적인 고민 뒤에 숨은 사회구조적 모순들을 짚어내고자 한다. 1930년대 남성들의 성적 방종, 제2부인 문제, 가정 폭력 기저의 조혼 풍습, 뿌리 깊은 정조 관념, 남성의 간통죄를 규정하지 않는 법 규정 문제 등이 얽혀 있었음을 확인한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성 윤리는 전근대와 근대, 일제의 식민 지배가 복잡하게 얽힌 특수한 공간에서 만들어졌다”면서 “길항하는 윤리 구조 사이에서 개인들의 욕망과 기획, 좌절과 고통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걸었지만 모두 무형의 근대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고 짚는다. “보편적 가치인 듯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랑과 연애 역시 근대의 탄생과 발맞추어 일정한 틀로 주조되었고, 모든 사랑과 연애, 가족은 아직도 그 진한 그늘에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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