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70호로 지정된 도산서원은 조선중기 대 학자인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서원의 입구 오른쪽에 석간대 라는 바위로 된 언덕이 있는데 그 바위에는 퇴계 선생이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그대 떠나가니 이봄 누구와 더불어 놀고 새 울고 꽃은 떨어지니 물만 홀로 흐르네 이 아침 물가에서 그대를 보내오니 훗날 그리워 만나려면 물가로 다시 오리라`선생의 애뜻한 마음이 담긴 이 시는 제자이자 친구처럼 여긴 귀암 이정을 떠나보내면서 읊은 시중에 한 귀절을 바위에 새겨둔 것이다. 안동댐이 건설되기 전인 1973년까지는 서원으로 가는 길(지금은 물 속에 잠겨버린 옛길)에 석간대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 1974년에 안동댐 건설 이후부터는 옛길이 물속에 잠겨 석간대를 볼려면 지금은 주차장 앞 선착장까지 내려가야 한다.도산서원 입구 안내판에는 서원의 건물을 한 눈에 볼수 있게 서원 전경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옆에는 `추로지향`이라는 기념비가 있다. 추로지향은 `중국의 맹자, 공자가 살았던 곳과 같이 안동은 예절과 학문이 빼어난 곳이다`는 말로 공자의 77세손인 공덕성 박사가 도산서원을 찾아와 사당에 참배한 후 전교당에 적혀있는 원규를 보고 500년 전의 선생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적은 글이다. 현재 안동을 예절이 바른 도시, 교육의 도시라고 말하는 것 또한 유교사상의 본향이 안동이기 때문이다.서원은 요즘관점으로 보면 사립학교에 속하며 두 가지 기능을 가졌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적 기능과,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 기능이다. 도산서원은 `전학후묘`(서원의 앞쪽이 공부를 하는 곳이며 뒤쪽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의 공간 배치로 되어 있으며, 전국 많은 서원의 표본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대원군때 많은 서원이 철폐 되었지만, 도산서원은 지금 현재까지 사액서원으로 그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다.도산서원은 한국의 600여개 서원 중에서 한국 서원의 특징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도동(대구 달성), 돈암(충남 논산), 무성(전북 정읍), 필암(전남 장성), 옥산(경북 경주), 소수(경북 영주) 남계(경남 함양)서원 등과 함께 2011년 12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 되었다. 지난해 11월 문화재위원회에서 우선 등재 대상으로 선정되어 2015년 1월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해 2016년 등재를 확정짓게 된다.▣ 시사단시사단은 1792년 정조임금이 선생의 학덕을 기리며, 영남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과거를 보았던 장소이다. 임금의 어명으로 과거를 볼 장소를 정하기 위해 당시 규장각 각신 이만수가 서원에 왔는데 장소가 너무나 협소해 강 건너 모래밭에서 과거를 보게 되었다. 그 당시 응시자가 약 7,000명이고 답안지를 낸 선비만도 3,600명이나 되었고, 왕이 직접 심사하여 11명을 시상한 역사적인 곳이다. 그런데 1976년 안동댐의 건립으로 물이 차오르자 과거를 본 장소를 보호하기 위해 현 장소에 10미터의 축대를 쌓은 것이다.▣ 도산서당퇴계 이황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지은 건물인데 재력이 부족했던 선생은 건물을 완공하는데 자그마치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건물의 오른쪽에서 부터 마루, 방, 부엌, 3간으로 되어 있다. 방안 왼쪽의 좁은 공간은 선생의 옷과 침구류를 보관하는 곳이며, 정면의 20㎝ 높이가 되는 턱은 퇴계 선생이 평상시에 읽으시던 책을 보관하는 곳인데, 선생은 배움을 받는 책을 어찌 사람과 같이 바닥에 놓을 수 있겠냐 하여 사람이 생활하는 바닥위 보다 높은 곳에 보관하였다. 서당 앞 연못에는 정우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꽃을 키웠으며, 서당 밖 화단에는 절우사 라는 이름을 붙여 매화, 대나무, 국화, 소나무를 심어 사계절을 달리하는 나의 벗이라 하였다.▣ 농운정사농운정사는 학생들이 숙식을 하며 공부를 하던 곳으로서 요즘의 기숙사와 같은 기능을 한다. 일반민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工`자형의 평면으로 건축하였다.이는 선생께서 제자들이 공부에 전념하란 뜻에서 다른 건물과는 달리 농운정사는 창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工자 형의 건물이라 방안을 밝게 하고 환기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뒤쪽의 작은 방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책을 보관하는 서고이다.  ▣ 고직사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서원관리와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요즘 학교의 관리사와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다. 고직사의 건물은 `ㄷ`, `ㅁ`자 모양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겨울에는 햇볕이 잘 들게 하여 따뜻하게 하고 바람을 막아주며, 여름에는 절반이상 그늘이 져서 시원하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막기 위해 지은 건물 형태임을 알 수 있다. ▣ 광명실전국서원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하고있는 곳으로 약5000여권의 책이 보관 되어있다. 오른쪽의 건물을 동광명실이라 하고, 왼쪽의 건물을 서광명실이라 한다. 동광명실에는 역대왕의 내사서적과 퇴계 선생이 자주 보시던 책이 있고 서광명실에는 퇴계선생이 돌아가신 뒤 근대에 발간된 책이 보관되어있다.서광명실 옆을 보면 아주 오래된 고목나무가 한그루가 서있는데, 이 나무를 회나무라 한다. 도산서원에서는 회나무에 관한 전설이 있는데 이 나무에 열리는 수많은 꼬투리 중 하나가 저절로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 소리 나는 꼬투리를 가슴에 품고 과거를 보면 장원급제를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인지 도산서원에서는 매년 한 명이 과거에 급제를 한 기록이 있다.     ▣ 동?서재동재는 선배들이 머무르며 공부를 하던 곳이고 서재는 후배들이 머무르며 공부를 하던 곳이다. 요즘의 선, 후배라 하면 1~5년 정도이지만 옛날의 선, 후배라 하면 보통 10~20년이니 같은 방에서 공부를 하기란 서로 힘이 들었기에 이처럼 두 개의 건물을 두어 생활하지 않았나 싶다.▣ 전교당(보물 제210호)퇴계 선생이 돌아가시고 4년뒤인 1574년에 지방의 유림과 선생의 제자들이 지은 건물이며, 두칸의 방과 여섯칸의 마루로 되어있다. 요즘의 학교 교실과 같은 기능을 한다. 도산서원이라는 현판은 조선시대의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의 친필이며 임금이 내린 사액 현판이다. 사액이란 임금이 직접 현판을 내린다는 뜻이다.전교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보면 좌.우측에 두 개로 되어있는데 좌측의 계단은 스승이 다니는 계단이고 우측의 계단은 제자들이 사용한다. 좌측계단 옆의 돌기둥은 정료대라 하여 서원행사시에 관솔불을 밝히던 곳이다. ▣ 상덕사(보물 제211호)상덕사는 퇴계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이며 일년에 두번 2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이라 하여 일반인들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세 개로 되어있는데 동쪽 문이 제관이 들어가는 문이며, 서쪽 문이 제물을 운반하는 문, 중간의 문이 신이 들어가는 문이다. ▣ 장판각장판각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책을 만들어내는 인쇄소와 같은 곳이다. 그런데,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건물과는 달리 앞쪽의 아래 부분과 위 부분으로 바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지만 뒷부분은 나무판으로 막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침에는 산에서 습한 공기가 내려오고, 저녁에는 건조한 공기가 올라가기 때문에 습기로 인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어진 건물 형태이다. 현재 장판각에는 2,700여장의 목판이 보관되어있다.▣ 전사청어느 집이든지 제사를 지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요즘 제사를 지내면 어머니가 제사음식을 만들지만 옛날에는 제사음식을 여자들이 만들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곳 도산서원에서는 평상시에 묘를 관리하고 제사가 있으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묘지기라 하였다.묘지기는 전사청의 오른쪽 건물의 방에서 기거를 하였으며 왼쪽 건물의 마루에서는 제사음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제사음식을 만드는 마루 아래를 보면 상당히 깊이 파여져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서원의 책이 훼손 될 것을 우려하여 감추었던 곳이다.▣ 옥진각1970년에 건립한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외부는 한식, 내부는 현대식으로 지었으며 `금성옥진`의 줄임 말로 `글을 읽는 소리는 금소리와 같고 글을 떨치는 것은 구슬과 같다`는 뜻이다. 이곳에 진열된 유품은 모두 선생이 사용하시던 일용품인 문방구와 실내 비품으로 하나같이 소박하고 검소하며 외면적인 꾸밈과 사치를 떠나 오직 청빈에 만족하신 도학자다운 일면을 엿볼 수 있다. ▣ 도산서원의 현판과 표시석도산서당(陶山書堂) : 글방,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완락재(玩樂齋) : 도산서당 방안에 있는 현판으로 완상하며 즐기니 평생을 이곳에서 지내어도 싫지 않다는 뜻이다.암서헌(巖栖軒) : 학문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제자들이 바위에 조그마한 효험이라도 바란다 라는 뜻이다. 농운정사(   雲精舍) : 언덕위에 걸려있는 구름 정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이다.시습재(時習齋) : 때때로 익히고 복습을 한다는 뜻이다.관란헌(觀瀾軒) : 물을 보는 법이 있으니 반드시 물결치는 이치를 살펴 보라는 뜻이다.지숙료(止宿寮) : 어떤 곳에 머물러 잠을 잔다는 뜻이다.고직사(庫直舍) :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전교당(典敎堂) : 늘 지켜야 할 가르침, 가르침을 담당한다는 뜻이다.한존재(閑存齋) : 삿된 생각을 막고 성심을 보존하다는 뜻이다.박약재(博約齋) : 학문을 넓히고 예를 지키라는 뜻이다.홍의재(弘毅齋) : 넓고 의연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다.상덕사(尙德祠) : 덕을 높이 여긴다는 뜻이다.전사청(典祀廳) : 전사청이란 제사를 관장하는 곳이라는 뜻이다.진도문(進道門) : 학문을 하여 도로 나아간다는 뜻이다.광명실(光明室) : 만권의 서책이 내게 광명을 안겨준다는 뜻이다.장판각(藏板閣) : 목판을 갈무리 한다는 뜻이다.역락서재(亦樂書齋) : 역시 즐겁지 아니한가 라는 뜻이다.옥진각(玉振閣) : `금성이옥진지`의 준말로, 모아서 크게 이루었다는 뜻이다.정우당(淨友塘) : 연꽃을 일컫는 말이다. 연꽃은 더러운 흙과 물에 자라면서 때묻지 않는다는 뜻이다.절우사(節友社) : 계절의 벗이라는 뜻으로 매화, 대나무, 소나무, 국화를 일컬는 말이다.몽천(蒙泉) : 산밑에 나는 샘이란 뜻이며, 바르게 가르치다 라는 뜻이기도 하다.열정(冽井) : 도산서원의 정문을 들어서기 전, 동쪽 산 밑에 있는 깊은 우물로 찬우물이라는 뜻이다.  곡구암(谷口巖) : 계곡의 입구란 뜻이다.매화원(梅花園) : 매화를 심은 정원이라는 뜻이다.천연대(天淵臺) : `하늘 나라의 연못`이라는 뜻이다.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 : 햇빛과 구름 그림자라는 뜻이다.석간대(石澗臺) : 산골짜기에 돌이 많은 곳을 흐르는 물이라는 뜻이다.▣ 주변볼거리 △ 퇴계태실이 집은 단종2년(1454) 퇴계의 조부인 이계양 선생이 세웠는데 후에 몸채의 중앙 돌출된 방에서 퇴계 선생이 태어났다. 어머니 박씨 부인이 "공자가 대문 안에 들어오시는 꿈을 꾸고, 퇴계를 낳았다"하여 대문을 성림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지금도 태실과 성림문이 보존되어 있다.현재는 퇴계 선생의 후손들이 성력으로 중수한 바 있으며, 몸채는 `□`자형 평면으로 중앙에 퇴계태실이 돌출되어 있고, 동남쪽 모서리에 마루를 두어 큰사랑과 작은사랑이 분리되어 있는데, 마루 상부에 온천정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몸채 동쪽에는 `一`자형 평면의 노송정이 자리잡고 있고 사당채가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풍모를 지니면서 태실과 같은 특이한 방을 둔 집이다. △ 퇴계종택대학자인 퇴계 이황 선생의 종택이다. 정문에 `퇴계선생구택(退溪先生舊宅)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은 1926~1929년 사이에 선생의 13대손 하정공이 옛 종택의 규모를 따라 신축하였다. 정면 6칸 측면 5칸의 `□`자형태인데 총 34칸으로 이루어졌다. 우측에 있는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마루에는 `도학연원방(道學淵源坊)`이란 현판 등이 게판되어 있다. △ 오천군자리오천군자리에 세거한 광산 김씨는 신라 49대 헌강왕의 셋째 아들인 김흥광을 시조로 모시며, 진성 이씨, 봉화 금씨, 안동 권씨 등 영남 사족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 일파가 안동으로 옮겨와 자리를 잡은 것이다,본래 안동 예안면 오천리에 있던 광산 김씨의 예안파 동성마을이었으나 안동댐을 건설할 당시인 1974년에 이곳으로 옮겨 지어 오천군자리를 이루었다. 군자리를 지키던 집들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제자리에 앉은 집의 의연함은 잃어버렸지만 집 한 채 한 채가 똑똑하고 의젓하여 옛 조선집의 멋과 격식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그래서 이 곳 군자리에 옮겨온 집들 가운데 두 채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고, 세 채는 경상북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가운데에 유물전시관인 숭원각을 지어 1350년대 고려 말기의 호적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5백 년 동안의 호적, 교지, 노비문서, 분재기 등 고문서 1,000여 점과 각종 문집 2,000여 권 등 광산 김씨 문중의 중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문서 7종 429점은 보물 제1018호로, 고서 13종 61점은 보물 제1019호로 지정 받았다.△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은 훼손 및 멸실의 위기에 처해있는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통하여 국학자료의 과학적인 보존방법을 모색하고, 전통문화와 사상에 기초한 교육을 통해 미래사회의 신한국을 이끌어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유교문화박물관은 한국국학진흥원이 개별 문중이나 서원으로부터 기탁받아 소장하고 있는 국학자료들 가운데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들을 엄선하여 전시하는 유교문화박물관이 6월 20일 개관한다. 이번에 개관하는 유교문화박물관은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알리고, 또 이를 토대로 아직도 열악한 조건 아래 민간에 흩어져 있는 국학자료의 기탁을 유도하려는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박물관 건립에는 건물 신축공사에 18개월, 내부 전시시설 시공에 20개월 등 총 38개월의 공사기간이 소요되었다. 또 국내 유일의 전문 유교문화박물관답게 건립 예산도 막대하여 건물을 신축하는 데 66억원, 전시시설을 갖추는 데 64억원 등 도합 130억원의 비용이 투입되었다. 구조는 4층 철근 골조 건물이며, 외벽과 지붕은 각각 화강암과 동판으로 마감되어 국학원 본관 건물인 <홍익의 집>과 조화를 이루는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전시실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크게 나뉜다. 상설전시실은 국학원이 수집하는 국학 자료들을 중심으로 전통문화의 핵심인 유교문화를 유교적 실천론의 뼈대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구도를 모티브로 삼아 소개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에 비하여 기획전시실은 국학원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와 개별 문중으로부터 협찬받은 자료를 중심으로 매년 주제를 바꾸어 개최하는 일종의 ‘문중유물특별전’ 공간이다.△ 이육사문학관  2004년 7월 육사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육사 문학관이 개관 하였다. 개관이후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곳 육사문학관은 일제 강점기에 17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 본명 이원록)선생과 관련, 흩어져 있는 자료와 기록을 한곳에 모아 육사의 혼, 독립정신과 업적을 학문적으로 정리해 그의 생가 터인 원촌리 불미골에 들어섰다.  1층에는 선생의 흉상과 육필 원고, 독립운동 자료, 시집, 사진 등이 전시돼 있고 조선혁명군사학교 훈련과 베이징 감옥 생활 모습 등도 재현해 놓았으며, 헤드폰을 착용하고 버튼을 누르면 청포도, 절정, 광야 등 육사의 주옥 같은 시(詩)를 눈과 귀로 접할 수 있는 첨단장치도 갖춰져 있다. 2층은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원천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영상실과 세미나실, 시상 전망대 등이 갖춰져 있고 육사의 이미지 그림과 시 등을 탁본하는 체험코너도 마련돼 있다. 건물 주변으로는 절정시비와 육사 동상, 청포도 샘과 선생이 형제들과 함께 생활한 육우당이 복원돼 있다. △ 산림과학박물관  안동에서 도산서원으로 이동하다 보면 산림과학박물관이 보인다. 공장도 없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함께 머무는 안동에 딱 들어 맞는 아름다운 박물관이다. 안동은 예로부터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나 이중환의 ‘택리지’에 복되고 좋은 땅으로 여러 번 소개가 될 정도 였다. 안동의 양반들은 집을 지을 때도 이러한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눈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산과 강을 있는 그대로 정원으로 이용했다. 산업화로 인해 좋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하는 현대인의 욕구에 발 맞추어 경상북도에서는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일대에 5만 4천평 규모의 대형 산림과학박물관을 완성했다.   산림박물관에는 각종 산림문화자료를 전시하는 자료전시실과 영상전시실을 갖출 계획이다.  영상전시실에는 첨단영상시스템을 도입해 산림의 역사와 자연의 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이 교과서에서 배웠던 자연현상들을 영상을 통해 직접 살펴보는 중요한 경험을 안동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박물관 주위에는 어린이 체험공간으로 꾸민 열린 자연교실과 향토수목원, 삼림욕장, 주차장, 잔디광장 등 각종 편의 시설도 조성되어 현장학습을 위해 찾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로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뿐만 아니라 사람과학박물관 가까이에 야생 생태공원도 함께 조성해 ‘동물이 살 수 없는 곳에는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줄 것이다. 특히 이 곳에는 야생동물을 직접 방사해 관찰하고 자연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에는 맹수를 제외한 산림 내 서식하는 일반 야생동물과 보호 및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을 방사해 자연관찰학습장 외에도 개체수가 점차 줄어드는 희귀야생동물의 증식장소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또 야생동물 구조 센터에서는 각종 사고나 먹이 부족 등으로 탈진되거나 부상동물을 전문 치료하는 시설도 갖추게 된다.   몸소 체험하는 자연사랑, 동물사랑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소중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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