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전선이 모두 모두 불에 타서 침몰됐고 제장과 군졸들도 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 모두 죽었습니다"(선조실록 7월22일)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한 후 선전관 김식의 보고다. 당시 해전은 원균이 지금의 거제인 칠천량에서 일본군에 대패한 싸움으로 원균도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선조는 애통해하며 하교하기를, `한산도 수군의 일이 일시에 무너지고 전선이 한 척도 없으니 경(卿)이 급히 30척을 제조해 수군을 도우라`고 하였다. 한효순은 명령을 받은 이후,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를 만들어 변산의 배를 태반 정도 입수했다."(월탄행보)같은 해 9월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물리친 명량 해전의 배경이다. 선조의 다급함, 승리 뒤에 배를 만든 이들의 노고 등을 알 수 있다. 노승석(45) 여해고전연구소장이 당시 체찰부사 월탄(灘) 한효순(1543~1621)의 `월탄연보`에서 임진왜란 관련 글을 발굴했다고 28일 밝혔다. 정유년 봄부터 한효순이 전선 23척을 제조해 한산도에 공급하고, 칠천량해전 후 다시 전선 30척을 급히 제조했다는 새로운 내용이다. 노 소장은 `월탄연보`를 근거로 이순신이 정유재란을 맞아 백의종군하고 수군을 재건해 명량대첩을 이루기까지의 전황을 기록했다. 이 내용은 노 소장이 발간한 `증보 교감 완역 난중일기`에 부록으로 실렸다. `증보 교감 완역 난중일기`는 노 소장이 2010년 펴낸 `난중일기 교감완역본`에 홍기문(1903~1992)의 최초 한글번역본 난중일기를 반영하는 등 내용을 보완해 펴낸 완역본이다. 노 소장은 "난중일기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후대의 이본을 모두 망라한 최종 완역본을 내놓은 것"이라며 "원문의 오자를 바로잡아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복원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번역을 했다"고 말했다.노 소장은 `증보 교감 완역 난중일기`와 함께 한문으로 된 용어들을 알기 쉽게 한글 위주로 풀고 내용을 재구성한 `쉽게 보는 난중일기`도 출간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