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창작뮤지컬 `살리에르`의 미덕이다. 대형 블록버스터 라이선스 뮤지컬의 화려함을 흉내내지 않는다.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내면에 주력하며 작품 구조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부제 `질투의 속삭임`에 방점을 찍는다. 뮤지컬이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르(1750~1825)는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에 가려 늘 2인자에 그쳤다. `살리에르`는 다른 겉치레는 모두 걷어내고, 오로지 질투만 한다. `젤라스`가 살리에르의 곁을 맴돌며 질투심을 부추긴다. `젤러스(jealous)`라는 영어단어에서 착안한 것이 분명한 이 캐릭터는 가상의 인물이다. 질투라는 감정의 물리화 또는 살리에르의 또 다른 자아로 작용한다.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안성맞춤이다. "노력이 이기지 못하는 건 없다"는 굳건한 신념의 살리에르는 젤러스의 유혹에 못 이겨 모차르트의 악보를 훔치고 만다. 뮤지컬 `살리에르` 역시 앞선 작품을 질투하며 무너질 수도 있었다. 영화 `아마데우스`(1984·감독 밀로스 포먼)를 비롯해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관계를 천재와 범인의 역학관계로 푸는 작품은 장르를 불문하고 수 없이 많았다. 김규종 연출은 그러나 다른 작품을 의식하고 욕심을 내기보다 중극장 창작뮤지컬이 할 수 있는 범주에서 가장 절묘한 것을 찾아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묘를 발휘했다. 선택과 집중의 최대치를 이끌어낸 셈이다. 극 속에서 모차르트는 천재 아이돌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모차르트 역시 무너지고 만다. 안정된 삶의 살리에르를 부러워했다. 뮤지컬은 결국 적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웅변한다. 재능과 환경에 대한 질투와 고뇌는 음악가들 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절규한다. 배우들도 호연한다. 착실하고 바른 이미지의 정상윤은 모범 궁정작곡가 살리에르 역으로 제 옷을 입었다. 세밀한 감정을 포착해내며, 서서히 무너지는 살리에르에 동화된다. 젤라스 역의 조형균, 모차르트 역의 문성일 또한 캐릭터에 충실하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나의 영광을 노래해` `노력한다면` 등 음악감독까지 겸한 피아니스트 이진욱이 작곡한 넘버들은 착실하게 극에 복무한다. 인물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듯한 무대 뒤편 거울 벽면은 단순함의 미학을 구현한다. 앞서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대형 블록버스터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엿본 한국 뮤지컬 관객들에게 또 다른 형식의 창작뮤지컬 선택지가 생겼다.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무대에 오르고 있는 `살리에르`는 이달 초까지 이 극장 바로 옆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모차르트!`와 맞붙었다. 그럼에도 눌리지 않게 꾸준히 관객들을 맞고 있다. 31일까지 볼 수 있다. 뮤지컬 `풍월주`의 정민아 작가,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의 최인숙 안무가 등이 뭉쳤다. 최수형이 살리에르, 김찬호가 젤라스, 박유덕이 모차르트를 번갈아 연기한다. 3만3000~6만6000원. HJ컬처. 02-588-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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