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떨어질 때소설가 정형남(67)이 `삼겹살` 이후 2년 만에 새 장편 `감꽃 떨어질 때`를 펴냈다. 일제강점기부터 6·25동란 이후까지 한반도를 살아간 이웃들의 삶을 복원한다. 시골 마을의 소박한 정취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입담, `역사와 개인`이라는 깊어진 주제의식 등을 통해 운명이라고 할 수 없는 비극적 시대를 산 한 가족의 한스러운 삶을 그린다. 장을 보러 가다 얼결에 일본군을 기습 공격하는 의병에 가담하게 되는 `조영`이 주인공이다. `조영`과 남편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고통의 시간을 겪는 `조영`의 아내는 전쟁의 환란 속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안타까운 시대를 산다. 일흔셋의 할머니가 옛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역사의 비극으로 생이별한 아버지에 대한 딸의 그리움을 담았다. 생사를 모르는 아버지를 향해 매년 감꽃 떨어질 때 기제사를 지내는 이의 비극적인 인생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다룬다. 320쪽, 1만4000원, 산지니 ◇만남의 방식2000년 `떠도는 섬` `당신의 저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정인(56)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제18회 부산소설문학상 수상작인 표제작 `만남의 방식`은 `나`와 왕래가 없던 재일교포 2세 `사촌`이 만나며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통역을 대동, 완벽한 일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촌은 `나`의 백부이자 그의 아버지의 유언을 전달한 뒤 부리나케 떠난다. 싸늘한 기운만 남는다. 고백과 폭로라는 일관된 구조를 통해 새로운 시작에 대한 전망을 타진해온 정인 소설의 정통성이 이번 소설집에서도 이어진다. 8편의 소설마다 빠짐없이 존재하는 `나`들은 다양하게 변주된 학교폭력, 성폭력, 가족갈등 속에서 고백 혹은 폭로를 선택하며 숨겨진 의외성을 드러낸다. 272쪽, 1만2000원, 자음과모음◇검은 호수2007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당선과 그해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하언(58)의 첫 소설집이다. 평사리 문학대상을 받은 표제작 `검은 호수`는 뿌리를 알 수 없어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미가 네스 호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작품은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영미`를 통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낙태의 비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차가운 손`, 어머니의 자살로 실어증에 걸린 주인공의 내면을 다룬 `문을 열다` 등 심각하게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 9편이 실렸다. 272쪽, 1만2800원, 나무와숲임신했으니 결혼, 차라리 잘됐다?     30대 초반의 J씨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결혼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많다고 합니다.“죄다 임신해서 결혼을 하네요. 전 확실한 사람이 아니면 그럴 용기가 없는데, 친구들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쩌다가 아이가 생겨 결혼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맞춰살기로 했다면서요. 과정이야 어떻건 결혼을 한다니 부럽기도 하지만, 좀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면도 있어요. 제가 너무 꽉 막혔거나 신중한 건가요?”성이 개방되고, 연애가 자유로운 시대에 살다 보니 요즘은 ‘혼수로 아이를 가져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혼전 임신이 많긴 하죠. 어차피 결혼할 사이라면 임신을 먼저 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임신으로 인해 관계가 바뀐 것이라면 진정으로 서로를 원해서가 아니라 책임감 같은 것으로 결혼하는 것인데, 좋은 결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너무 생각이 많아도 결혼결정을 못하겠어요. 어떤 사람과 결혼을 생각할 때 과연 이 사람이 결혼에 적합한지, 단점도 이것저것 보이고. 아무튼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도 많지만, 반면 결혼을 망설이게 되는 이유도 많아집니다. 하지만 임신 같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결정을 하게 되니까요. 뭔가 결정하기 힘든 애매한 상황에서는 그런 결정적인 계기나 이슈도 필요한 것 같아요.”임신도 그렇고, 그밖에 결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결혼결정을 하는 것도 괜찮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런 결정에 후회는 없을까요?여성1: 내가 아는 언니는 30대 중반인데,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혼자만 남아서 외롭다고 노래를 하더니, 남자를 만나고는 성급하게 결혼결정을 하고 후회하다가 결국 헤어졌다. 결혼도 그렇지만, 너무 간절히 바라면 그것만 보이고, 그래서 좋은 선택을 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남성1: 난 헤어지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등산을 하고 내려와서 산이 보인다고 할까? 친구들은 두 세 달 만나본 시점에서 괜찮으면 밀어붙이라고 한다. 여성2: 선을 본 사람과 두 달 정도 만났는데, 결혼얘기가 벌써 오간다. 난 시간을 두고 만나면서 결정하고 싶은데, 선을 봐놓고 왜 그렇게 뜸을 들이느냐는 눈치다. 이렇게 결정하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좋지만, 더 만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남성2: 난 ‘욱’하는 성격인데, 그녀에게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들키고야 말았다. 여자들이 이런 성격을 좋아할 리 없으니,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만나려면 그 성격 고쳐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걸 보고는 이런 여자라면 내가 이 못된 성격 고쳐서라도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3: 남들 앞에서는 굉장히 강하고 냉정한 사람인데, 나랑 있을 때는 의외로 약해지는 걸 보면서 ‘이 사람이 나를 믿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가 프러포즈한다면 난 받아들일 것 같다.남성3: 그녀가 주유상품권이 당첨되었다면서 자기 태워다니느라 돈 많이 들텐데, 이거라도 보태라면서 내밀 때 그 마음씀씀이가 예뻐서 확 넘어갔다. 그리고 그 때 그렇게 결정한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사람 만나다 보면 의례적으로 하는 행동인지, 진심으로 하는 건지 느껴지니까. 모든 면이 좋아서 결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더 좋은 사람을 찾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죠. 그래서 떠나보내고 후회하기도 하고요.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게 우리들이지요.그래도 분명한 건요, 그 어떤 불가항력적인 일이 있어도, 물론 누군가는 그것이 인연이고, 운명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주변적인 상황에 밀려 결혼결정을 하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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