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권모술수로 사리사욕을 채운 `이중생`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거짓 자살극을 꾸민다. 가짜 장례식을 열고 병풍 뒤에 죽은 척 숨어서 지내는 모습은 `블랙 코미디` 자체다. `맹진사댁 경사` `시집가는 날`의 극작가 오영진(1916∼1974)이 1949년 발표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혼란스러움을 통해 인간의 허욕에 대해 풍자한다. 65년이 지난 지금과도 묘하게 겹친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 차명 재산을 난무하는 작금의 부자들은 사위 `송달지`에게 재산을 임시방편으로 맡겨놓은 이중생과 다를 바 없다.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보인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이중생뿐 아니라 주변 인물이 입체적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중생 부의 적재를 위해 초기에 이용당하나 그와 다를 바 없는 친형 `이중건`, 중생의 우둔한 아내인 `우씨`, 아버지에게 얹혀살면서 재산을 얻기 위해 온갖 비위를 맞추는 큰딸 `하주`, 신여성으로 아버지의 비리와 도덕심 결여에 대해 비난하지만 절연은 못 하는 막내딸 `하연`, 이중생이 징용에 보내지만 다시 되돌아오며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아들 `하식`, 이중생의 위장 죽음이 실패한 뒤에도 자신의 몫만 챙기려는 변호사…. 짧은 러닝타임(100분) 동안 이들의 개별적인 욕망이 적절한 순간에 드러나고, 이중생의 욕심과 맞물리면서 묘한 긴장감과 리듬을 형성한다. 하주의 의사 남편으로 사상적으로는 깨어있으나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의 전형인 송달지는 막판 본의 아니게 용기를 낸다. 이중생의 빈소를 찾은 정부 측 사람에게 자신이 상속받은 이중생의 재산을 사회사업인 무료병원을 위해 내놓는다는 의사를 내비친다.송달지도 그러나 다른 가족들처럼 이중생의 안위에는 관심 없다. 평소 `허당`의 삶을 산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 모든 재산을 잃게 된 이중생은 가족들이 흩어진 무대에서 자기 죽음을 위장하는데 도용된 `면도칼`을 가만히 바라본다. 일을 도와주러 온 어느 아낙이 그런 이중생을 보고 `귀신`이라고 소리 지른다. 모든 것을 잃고, 입고 있는 수의만 건진 이중생은 자신이 정말 "귀신이구먼"이라면서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희극작가 오영진의 연극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첫 번째 작품으로 선보인 건 안성맞춤이다. 근현대 희곡을 통해 현대사회와 현대인이 안고 있는 문제를 인과적으로 점검해 보고자 기획했다. 이 기획을 아우르는 주제는 `자기응시`다. 이중생은 막판에 스스로 자기 직면을 하게 된다. 결국, 귀신으로서 이 지리멸렬해진 삶에서 빠져나갈 수밖에 없음을 직감한다.이중생이 죽은 뒤 그의 시체 위로 모든 등장인물이 몰려든다. 관객들은 그 속에 내가 있음을 깨닫는다.`연극에서 배우들을 제외한 다른 여타의 것들은 불필요하거나 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미니멀리즘을 구현하는 김광보 연출의 특징은 이번 극에서도 빛을 발한다. 배우들을 극 속에 집어 던지고, 연출을 최소화하는 방식은 오영진의 풍속화를 제대로 살려낸다. 이는 원작의 힘을 빌려 자연스레 김광보의 세밀화로 수렴된다. 근현대 희곡의 힘을 새삼 체감하게 된다.희극성과 비극성을 동시에 지닌 배우 정진각은 자신의 `블랙 코미디` 특기를 이중생에게 투영한다. 박동우의 무대는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의 집처럼 견고하게 서 있다. 2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배우 김재건, 정태화, 연운경 등이 출연한다. 2~5만원. 국립극단. 1688-5966말 그대로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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