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공격적이에요." 1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의 수은주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정명훈(61) 예술감독의 차분한 조언이 실내 온도의 균형을 맞췄다. 서울시향이 지난해에 이어 펼친 `제2회 정명훈 예술감독 지휘 마스터클래스`에는 `차세대 지휘자` 자리를 노리는 젊은 연주자들의 열정과 땀방울로 열기로 가득했다.수원시향과 사라예보 필하모닉 등을 객원 지휘한 이태정(37)은 서울시향 70명의 단원에게 영화 `명량`의 이순신을 예로 들며 과감하면서 카리스마 있는 지휘를 보여줬다. 젊은 시절, 자신도 소리를 엄격하게 만들려고 했으나 오히려 화를 돋게 했던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놓은 정명훈 예술감독은 그에게 "곡을 연주할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문했다.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주려고 할수록 오히려 그것이 장애물로 작용해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항상 소리를 통제하려고 하지 마세요. 피아노 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두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흘러가는 것이고 단지 몇 번 정도만 두드리는 것처럼 소리가 날 뿐이에요.?" 정 예술감독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또 여러 농담으로 경직된 분위기를 풀려고 시도한 이태정에게 "?지휘의 목적은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연주자들의 흐름과 함께해야 한다"면서 "당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연주자들과 교류하며 약간의 안내를 해주면 된다"고 짚었다. ?작년 9월 처음 열린 `정명훈 예술감독 지휘 마스터클래스`는 서울시향이 전문 음악가 양성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다.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할 기회가 부족한 젊은 지휘자들에게 연주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재능있는 지휘자를 발굴하는 자리다. 정명훈 예술감독 앞에서 포디엄에 설 기회를 주고 그에게 조언을 들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다. 이번에도 지난 회처럼 `서울시향 지휘 마스터클래스 운영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 5명의 차세대 지휘자가 참가했다. 이태정을 비롯해 지난해 브장송 지휘 콩쿠르의 결선 진출자인 윤현진(32), 버팔로 필하모닉을 객원 지휘한 이태영(42), 독일 바이에른 코부르크 주립극장의 부지휘자인 정주현(36),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오디션에서 결선에 진출한 장 진(36·Gene Chang) 등 국내외에서 실력을 쌓은 미래의 지휘 거장들이다. 이들은 이날 브람스 `교향곡 4번`을 각자 선택한 악장으로 30분씩 지휘했다. 포문을 연 장진에게 정명훈 예술감독은 "좀 더 지휘자가 자신감을 가져야 연주자들이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제스처가 많은 정주현에게는 "움직임이 크면 누군가는 실수할 수도 있다"면서 "?템포가 안정됐으면 다른 행동을 할 필요는 없어요. 만약 약간의 지시를 하고 싶으면 우아하게 약간만 움직여 주면 됩니다"라고 조언했다. "단순할수록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더 많은 제스쳐는 의미를 감소시킵니다."이태정은 정명훈 예술감독의 조언에 대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즐거워했다. "지휘뿐 아니라 티칭에 있어서도 거장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심각하고 우수적인 음색의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지휘하면서 죽음을 결연한 이순신 장군의 마음처럼 연주하고 싶었다는 그는 "`긴장과 에너지는 너무 지나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정명훈 예술감독은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편안하게 조언하며 차세대 지휘자들을 이끌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로 포디엄에 오른 윤현진과 이태영에게는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았다. 마스터 클래스 도중 평소 그의 지론인 "지휘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1분 만에 테크닉을 알려줄 수 있어요. 네 가지 박자만 배우면 되거든요. 그런데 배우는 것이 1분이지만, 그것을 30년 해야 합니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지휘자는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한다고 짚은 정명훈 예술감독은 미디어와 만난 자리에서 이날 포디엄에 오른 지휘자들에 대해 "브람스 심포니 4번은 특별히 힘든 곡인데, 그래도 잘했어요"라고 평했다. "우리가 조금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죠. 하지만 악기할 때 몇 년 동안 선생님에게 배우지만, 지휘는 오히려 그러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룰을 따라서 그대로 배우는 것이 지휘가 아닙니다. 여기서 조금 배우고 저기서 조금 배워서 본인의 것을 만들어야 하죠. 그래서 특별히 배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조금 무언가 도움이 됐다면 큰 역할이 된 거죠."하지만 클래스를 자주 열어서 지휘자를 양성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되려 연습할 때, 음악 공부하는 학생들이 올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저도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좋아하는 지휘자 연습을 계속 보는 게 가장 좋아요."이날 행사는 일반인도 참관했다. 현업, 학원, 취미로 음악을 하는 10명이 SNS 이벤트를 통해 당첨됐다. 현장을 지켜본 관현악(비올라)을 전공하는 대학생 원지현 씨는 "항상 무대에서 완성된 공연만 보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도하게 돼 재미있었다"면서 "지휘자별로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맞게끔 조언해주시는 정명훈 지휘자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약 3시간의 마스터 클래스가 끝나고 다섯 지휘자는 정명훈 예술감독과 면담을 했다. 그의 평가와 이날 합주한 70여명의 단원들의 평가를 더 해 최고 점수자를 가린다. 결과에 따라 재단 소속 지휘자 영입 가능성을 검토한다. 2015년 문화사업팀 공익과 기획공연 지휘 기회자의 검토 대상에도 들어간다. 이날 현장을 지켜본 최수열 서울시향 부지휘자가 지난해 마스터클래스 최고점자였다. 그는 지난 7월 서울시향에 영입됐다. 정명훈 예술감독은 마스터클래스 도중 지휘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시작은 어렵지 않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당신의 음악적 생각을 수백명의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에요." 그러자 다섯 지휘자의 눈빛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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