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못의 역사와 관련, 수성구의 일본인 높이기 사업에 대해 현역 수성구의원이 제동을 걸고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초선인 강민구 수성구의원(사진)은 19일 발표한 구정질의서를 통해 "수성구가 1999년 정체가 모호한 `한일친선교류회`와 손잡고 미즈사키 린타로씨의 묘를 재단장했다"며, "기존 정치인, 정치 지망생이 이 단체에 많이 가입돼 있다. 그 실체가 무엇이냐"고 따졌다.질의서 서두에서 강 의원은 미즈사키씨가 수성못을 최초로 만든 `축조`가 맞는가, 축조했다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일제에 의한 근대화론에 동조하는가를 물었다. 세부적으로 강의원은 수성못 산책로의 이상화선생 등신대가 있는 바로 앞에 극존칭의 미즈사키씨 안내판이 설치됐는데, 수성못은 일본인이 최초로 만든 축조가 아니라 증축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세종 때 경상도 지리지에서 부터 영조 때 대구읍지에 이르러 고증되고 있다고 밝혔다. 강의원은 미즈사키 `공`이란 칭호가 합당한가와 그가 개척농민으로 조선에 온 것으로보아 부산근대역사관의 자료에 비춰 수탈시스템의 일환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또 `현창비`를 주도한 한일친선교류회의 서창교(작고)씨는 일본에서 고위 훈장을 받았고, 수성못 일대를 다 벚꽂으로 심겠다고 공언한 사람이라고 밝혔다.수세징수와 관련해서 강의원은 지난번 본지(8월18일자 1면)에 밝힌 내용을 증명하는 당시 기사를 확보했다. ‘1927년 동아일보 기사의 내용 중’에 수세와 관련해서 민자사업으로는 막대한 이익을 챙긴 점, 소수 지주들에게 혜택이 돌아갔고, 부담은 소작농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점을 확인했다.   강 의원은  "이같은 일이 이상화 선생이 피를 토하며 ‘빼앗긴 들에도 봄을 오는가’를 외치고 있는 수성들녘의 면전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1999년 묘비만 남았던 일본인 묘지를 거창하게 보수하고 현창비까지 세웠으며, 2012년 수성못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면서 산책로에까지 미즈사키 린타로를 친절히(?) 알리고 있다. 하지만 2005년에 세워진 커다란 돌덩이 이상화 선생 시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안내판 하나 없다. 대구가 자랑하는 시인에 대한 소개, 그 시를 쓰면서 울분을 토한 일제식민화와 해방에 대한 열망에 대해서는 안내가 없다. 민족 시인에게는 참으로 불친절하다. 왜 이런 것인가?"고 결론지었다.한편 지난 8월 중순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일본을 공무차 갔다왔다는데 그 행선지가 미즈사키 닌타로씨의 고향인 기후시로 알려졌다. 본지가 수성구청에 "이진훈 구청장의 방일이 공무인 만큼 관련 내용에 대한 보도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수성구청은 "아직 방일 결과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공식 일정표에 대한 거듭된 본지의 요청에도 수성구청은 "다른 언론에서는 요구하지않는 자료는 왜 요구하느냐. 구청과의 신뢰관계가 있으면 요청하지 않는다"며 어이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본지는 마지막으로 강민구 수성구의원을 통해 일정표를 간접적으로 요청했으나, 이진훈 구청장의 광복절 주간의 일본 기후시 방문 관련 공식 일정표는 결국 공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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