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랑켄슈타인` `두 도시 이야기`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뮤지컬스타 이건명(42)은 예스런 배우다. 엔터테이너 형의 배우가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쇼적인 성향의 뮤지컬에서 품격을 잃지 않는다. 춤·노래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연극으로 무대에 데뷔한 덕에 연기력도 안정됐다. 올해 데뷔 19년차인 그는 선배들에게 엄하게 배워 특히 기본기가 몸에 배어 있다. 그 때문에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기하는 요즘 배우들 사이에선 예스런 분위기로 눈에 띈다. 이건명의 말마따나 "향수로 가득한" 뮤지컬 `그날들` 재공연에 그가 캐스팅된 건 그래서 안성맞춤이다. 지난해 초연한 이 뮤지컬은 주 뮤지컬소비층인 20~30대 관객뿐 아니라 중년층까지 끌어모으며 객석 점유율 96%를 기록했다. 가수 김광석(1964~1996)의 노래들로 엮은 창작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먼지가 되어` `그날들` 등 김광석의 노래들은 그 자체만으로 추억을 소환한다. 주요 배경 역시 1992년이다. 대통령의 딸과 수행 경호원의 사라진 행방을 뒤쫓는 경호부장 `정학` 앞에 그 때 사라진 경호원 동기생 `무영`과 `그녀`의 흔적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최근 청담동에서 만난 이건명은 "작년에 객석에서 `그날들`을 보는데 입이 달싹거려서 혼났다"면서 "1990년대 진한 추억이 묻어 있는 노래들이 울려퍼지더라고요. 제의가 와서 덥석 물었죠"라고 웃었다. 뮤지컬은 아픈 첫사랑에 대한 헌사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추억을 다시 돋아나게 한다"면서 "향수를 일으키는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그날들`의 초연에 이어 재공연의 연출을 맡은 장유정(38)씨는 "일찍 생을 떠난 김광석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그렇게 미안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어요"라고 이 작품의 의도를 밝혔다. 주인공의 직업인 경호원인 것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대한 은유인 셈이다. 노련한 이건명은 자연스레 장 연출의 그런 마음을 흡수했다. `그날들` 연습에 임하고 나서 경호원처럼 남을 배려하고 보호하려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김광석을 비롯해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고 눈을 빛냈다. 앞서 지난해 뮤지컬배우 유준상, 오만석, 강태을이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인 정학을 연기했다. 평소 유들유들한 이미지가 강한 이건명의 정학은 좀 더 인간미가 묻어날 듯하다. "처음 등장하는 정학은 46세의 완벽주의자죠. 관객들이 `왜 저렇게 독하게 살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점차 찾아갈 수 있도록 연기했으면 해요. 정학이 가슴 아픈 옛 추억과 화해해 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싶습니다."평상시 누구보다 파이팅이 넘치는 그는 최근 들어 고뇌가 넘치는 역을 주로 맡았다. 괴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박사 `빅터 프랑켄슈타인`(`프랑켄슈타인`), 짝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죽음까지 내던지는 시드니 칼튼(`두 도시 이야기`). 정학 역시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젊을 때 낼 수 있는 에너지와 모양새가 있죠. 그런데 나이 들어서 보여줄 수 있는 건 좀 다른 듯해요. 좀 더 진중하거나 깊이 있는 무대.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죠. 나이를 먹을수록 연기가 깊어가는 것이라면 내년, 20년 후가 더 기대될 수밖에 없죠."김광석 노래을 대하는 태도 역시 예전과 달라졌다. "예전에는 따라 부르기 급급했는데 요즘에는 부를 때마다 노랫말을 느끼면서 매번 감탄하고 있어요. 젊었을 때 10을 느꼈다면, 지금은 49정도. 김광석 감성의 100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그 감성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심정으로 부를 겁니다."팬들이 합심해서 생긴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 `잘생겼다`에서 보듯, 그의 인기는 여전히 시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뮤지컬 `잭더리퍼` 일본 공연 등으로 현지 팬들까지 생겼다. 한류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규현이 무영 역으로 출연하지만 초연에 비해 일본 팬들의 티켓 예매량이 늘어난 건 이건명 덕도 크다. 그는 뮤지컬배우로는 이례적으로 10월 3, 4일 일본에서 팬미팅 겸 콘서트를 연다. 3일에는 뮤지컬배우 김법래와 듀엣 콘서트, 4일에는 단독으로 크루즈 선상에서 현지 팬들과 만난다. "참 감사한 일이죠. 제게 애정과 신뢰를 보내주시는 일본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일본 공연에서 먼저 `그날들` 삽입 넘버를 들려드릴 거예요. 제가 트위터에 `그날들`에 출연한다고 하니 이미 김광석 노래를 찾아보신 분들도 있더라고요." 뮤지컬배우의 위상이 이처럼 높아졌으나 그가 뮤지컬계에 첫발을 들여 놓던 때만 해도 이 바닥은 험난한 곳이었다. 뮤지컬배우로서 자존심이 있었던 그였으나 친한 친구가 그의 손에 10만원을 쥐어주고 돌아섰을 때 "나도 살아야 했기 때문에 (돈을 돌려주기 위해)그 친구를 충분히 뒤쫓아갈 수 있었음에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 서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에 계속 연기를 했고 그 덕분에 지금은 더 행복한 사람이 됐다. 무대 안팎에서 늘 행복한 그를 보고 덩달아 행복해하는 팬들도 늘었다. 이건명은 그런 감사한 마음을 소외계층 청소년을 돕기 위한 도네이션 릴레이 콘서트 `후엠아이`를 통해 되돌려주고 있다. 몸은 바쁘지만 그래서 더 크게 웃을 수 있다. "요즘처럼 좋은 작품에 계속 출연할 수 있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죠. 그 기운을 무대 안팎에서 전달해드리고 싶어요. `그날들`은 그 위에 위로까지 안겨드리는 기회가 되겠죠."뮤지컬 `그날들` 10월21일부터 2015년 1월18일까지 서울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 이건명, 유준상, 강태을, 지창욱, 오종혁, 규현, 작·연출 장유정, 편곡·음악감독 장소영, 무디대자이너 박동우, 안무감독 신선호.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02-541-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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