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약전골목이 인적 네트워크의 결속력 약화와 유통구조의 변화에 따른 카르텔의 지배력 상실 그리고 관계 기관의 근시안적 활성화 대책으로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지는 임대료 수익을 기대하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더 올려주겠다는 커피점주와 식당의 제안에 끌려 기존 한약업사와의 재계약을 꺼린다(본지 6일 자 1면 보도)는 보도를 한 바 있다. 현재 약전골목엔 50대 초반의 한약업사는 전무한 상황이며 대부분 50대 중후반 이상의 높은 연령층을 형성하고 있다. 직업상 약재를 생산, 수집, 소비의 유통과정에서 긴밀한 협조가 요구됐다. 한 약업사는 “이곳엔 누구 하나가 세상을 떠나거나 어디로 이사 가지 않는 한은 아무나 들어와서 장사할 수 없다”며 높은 진입장벽을 얘기했다. 또 “긴밀한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고 인맥을 형성하기 때문에 서로 눈치가 보여 예전엔 20평 기준으로 70만 원 정도의 임대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지금은 건물주와 임차인의 연령이 높아지고 현대백화점의 입점에 따른 주변 지역 임대료 상승이라는 변화 등으로 이들 간에 네트워크가 약화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십 년 해오던 임차인을 보내고 리모델링해 자기 입맛에 맞는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사례도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유통구조의 변화로 인해 약전골목 한약업 종사자들간에 가격과 생산량, 판로에 대한 암묵적 협정이 더 이상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단계이며 단순히 개별 장사의 차원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약전골목은 확실한 히트상품을 개발하지 못하는 등 차별화된 특징이 전무한 상태여서 이는 경쟁력 약화, 상권의 침체로 직결되고 있다. 이외에도 한약업사 신규배출제한, 개별포장 금지, 한약조제자격 제한 등의 제도적 문제도 존재하고 있다. 한의사 김모(63)씨는 “몇년 전 한약도매상에서 판매하는 한약 건재료의 가격이 폭등했는데 중간에서 몇몇 품목을 투기꾼이 매점매석할 수 있는 구조이다”면서 “일부 한약건재영업제약회사가 약전골목의 상권을 힘들게 한다는 일부 불평도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관계 기관의 근시안적 활성화 대책도 약령시 부활의 신호탄을 쏘기엔 너무나 미흡하다. 대구시는 30여년째 약령시 축제를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했고 올해도 총 4억2000만 원의 예산을 썼지만, 약령시 행사 자체가 직접 한약재상의 매출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 일회성 축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구청도 마찬가지다. 2011년에 새로 단장한 ‘대구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엔 한방족욕체험과 한방비누만들기, 한방향첩만들기, 한방미스트만들기, 한방차 시음하기 등의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특히 한방차 시험하기는 국산한약재로 달인 십전대보탕, 쌍화탕 등을 마실 수 있다. 이런데도 중구청은 최근 356년 전통의 약령시 활성화와 근대골목투어의 거점화를 위해 52억7000만 원을 들여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을 조성했다. 두 장소의 존립 이유에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구청관계자는 “한의약박물관은 통상 교육과 전시가 주목적이다”며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은 1층에 있는 한방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2층에서 안마체험과 오감체험 등 힐링체험을 하는 것”이라고 두 장소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약전골목이란 장소는 한의학이란 독특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고 이곳을 활성화해 도시이미지를 재구축할 수 있는 ‘장소마케팅’의 적합지이다. 그러나 국내최대 한약재 도매상이라는 자원이 상품화·차별화되지 못하면 “앞으로 5년 내지 10년 정도로 한약방 약전골목이 버텨내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한 약업사의 고백에 귀 기울일 시점에 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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