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항상 선과 악이 존재한다. 선을 대변하는 주인공은 보통 타인을 구하는 데 애쓴다. 반면 악인은 타인을 죽인다.그런데 영화 속 명확했던 선과 악의 경계가 어느 순간부터 흐려지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사람만 구하면 선이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2014)에는 미래에 세계 안보를 위협할 인물 2000만 명을 미리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이에 주인공 스칼렛 요한슨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이제 잘 모르겠어"라고 털어놓는다.영화는 결국 누구를 위한 폭력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캡틴 아메리카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가 죽인 무고한 시민들, 그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은 어디 가서 피해를 호소해야 하나. 배트맨은 치외법권인가.생각하기는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선과 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늘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입관과 편견은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만개한다"는 장의관 박사의 말대로 우리는 선입관과 편견 속에서 살아야 한다.`생각하는 사회`의 저자인 장 박사는 "행복을 원한다면 삶을 고민하는 일은 불가피하다"고 일갈한다. 예를 들어 시의회가 공원을 건설하는 법안을 제정했다고 생각해보자. 공원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이지만 사실 공원을 이용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결혼법도 살펴보자. 우리는 특정 연령에 달했을 때 결혼 자격을 얻는다. 중혼은 금지되고, 남녀 사이의 결혼만 인정된다. 국가가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결혼은 인정받지 못하고 벌금도 내야 한다.결혼법 제정이나 공원을 짓는 등의 정치적 결정이 가치를 배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정치적 결정이 경제, 문화, 도덕 등 영역에 깊숙이 개입해 있는 만큼 그 가치 배분이 "통치자의 자의적이고 강압적 결정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 내에서 기본적 동의의 원칙과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저자가 `생각하는 사회`에서 안락사, 낙태, 마약, 동성애, 부유세, 사형, 매춘, 사치 소비 등 이미 잘 알려진 8가지 논쟁을 다시 짚고 넘어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주제들에 대해 "워낙 친숙해서 나름의 정리된 해답을 우리 사회가 이미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면서 "하지만 깊이 있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각 장은 `왜?`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게 성의 있는 논쟁과 그 배경을 담았다. 1장 `안락사는 금지되어야 하는가?`는 죽음의 역사, 안락사란 무엇인가,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들, 한국의 안락사 논쟁, 개인은 죽을 권리가 있는가, 삶은 그 자체로 축복인가, 안락사는 비이성적인 선택인가,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것, 강요된 안락사와 미끄러운 경사로 논변 등으로 구성돼 있다.만약 묻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사람을 죽이면 악이고 구하면 선이라는 세상 어디에도 적용할 수 없는 단순한 정의를 전파하는 영화를 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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