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견디는 자’ 단테는 전작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큰 시련을 겪은 한국사회에 위로가 될 듯하다.  사자(死者)가 심판을 받고 선별돼 가게된다는 지옥연옥천국의 고통과 희열을 미리 경험한다. 연옥의 불안과 지옥의 고통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감히 누가 죄를 지을 수 있을까.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연극 ‘단테의 신곡’이 1년만에 업그레이드돼 돌아왔다. 단테의 ‘신곡(神曲)’을 재해석했다. 이탈리아의 정치가 겸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가 썼다. 망명 시절 집필한 100편의 시로 구성된 서사시다.  이번 무대에서는 ‘단테의 그림자’와 ‘늙은 단테’가 등장한다. 원작과 초연에는 없다. 단테가 스스로를 응시, 자기 성찰을 하는 존재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본래 2막에 등장하던 거대한 경사의 언덕 무대가 1막부터 등장한다. 단테는 연옥을 오르면서 여러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한다. 제 잘난 맛에 살아온 그다. 죄가 없고 깨끗하다고 부르짖었다. 초연보다 세상에 대한 책임감이 더 느껴진다.  현실에 더 밀착한다. 단테가 객석 뒷부분에서 가운데 통로를 가로질러 등장하고 다시 이를 가로질러 퇴장한다.  그가 겪은 고통은 현대인이 겪고 있거나 겪게될 고통과 다를 게 없다는 은유다. 무대디자인의 명장 이태섭이 합류, 새로 설계된 무대의 변화는 2막에서 두드러진다. 지옥연옥천국에 부피감을 더한다. 영상, 아크릴, 철재 등의 소재를 사용해 지옥연옥을 수직으로 표현했다. 이곳에서 견디는 자들은 밑으로 끊임없이 떨어진다. 견디기도 버거운 인생처럼.  15인 국악양악 혼합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30곡을 이태원, 홍정의 작곡가가 편곡했다. 단테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은 절망의 순간에 애절하게 노래한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찾기 위해 지옥연옥을 헤맨다. 천국에서 만난 그녀는 ‘천국은 어디든 있다’고 말한다. 길 위에 천국이 있다. 힘겹게 돌고 돈 끝에 파랑새가 우리 곁에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국립극장의 2013~2014 레퍼토리 시즌작 가운데 하나로 2014~2015시즌에도 합류했다. 국립극장의 또 다른 명작 레퍼토리 작품이 탄생한 순간이다. 무대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애초 기획한 틀을 이어가면서 개작해나갈 수 있다. 업그레이드란 이런 것이다.  지난해 초연 당시 극중 단테가 여행을 떠날 때 나이와 같았던 지현준(36)은 1년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분노와 연민, 애틋함의 농도가 더 짙어졌다.  단테의 길잡이 베르길리우스를 연기하는 탤런트 겸 연극배우 정동환(64)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남편의 동생과 애욕에 휩싸이는, 지옥에서 등장하는 ‘프란체스카’ 역을 맡은 연극배우 박정자(71)는 존재감만으로 빛을 발한다.  8일까지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미노스 김금미, 베아트리체 김미진, 연출 한태숙. 재창작 고연옥, 안무 이경은.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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