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謙齋) 정선(1676~1759)·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혜원(蕙園) 신윤복(1758~?)’서양화가 남경민(45)이 자신의 화면으로 끌어들인 조선 후기 풍속 화가들이다. 서양명화를 창작한 대가들의 작업실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해온 남경민이 작업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며 이들의 작업실을 화면에 풀어놨다.서울 종로구 율곡로 49-4 사비나미술관에 들어서면 남경민이 재구성한 조선시대 대가들의 작업실이 화려한 색감으로 펼쳐져 있다. 전시장을 환하게 밝힌 풍경은 ‘신윤복 화방’ ‘신사임당의 화방’ ‘정선의 서재’를 비롯해 ‘부용정’ ‘규장각’ 등이다.작품 가운데 신윤복 ‘미인도’의 주인공이 거울 속에서 걸어 나오는 듯한 모습을 담은 ‘신윤복 화방- 화가 신윤복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가 주목된다. 바닥에는 그 여인의 한복 치맛자락 그림자가 비친다. 화병에 꽂힌 백합꽃도 보인다.남경민은 “한복 치맛자락이 바닥에 비치는 듯한 모습은 그림이면서 또 다른 거울을 표현한 것”이라며 “나와 신윤복과 미인도가 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의미를 주고 싶었다”고 소개했다.김홍도의 방으로 추정되는 ‘김홍도 화방을 거닐다’란 작품에는 김홍도가 그린 군선도(群仙圖)와 작약꽃 화분, 그의 스승인 강세황(1713~1791)의 책 등을 만날 수 있다. 김홍도가 즐겨 연주하던 비파와 생황, 거문고 등도 화면을 채웠다. 테이블과 의자 등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의자는 나의 페르소나일 수도 있고 그림을 보는 누군가의 페르소나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요소”라며 “처음에는 방석으로만 그릴 생각이었으나 옛 문헌을 찾아보고 연구해 당시의 생활상을 알게 되면서 자유롭게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책상이나 의자의 모습은 ‘규장각 안에서 부용정을 바라보다’와 ‘정관헌 풍경 속에 머물다’ 등의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이번 작업은 2007년 정선의 그림이 담긴 민화 화첩을 접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조선시대의 화가와 그들의 삶을 본격적으로 탐구했다.남경민은 “툇마루에 앉아 작약꽃을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이 담긴 겸재 정선의 그림 배경의 서재가 나의 서재와 다른 것을 보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게 여기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그동안 피카소나 렘브란트 등 내 작업에 영향을 준 서양화가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나의 핏줄이자 정체성을 보여주는 선조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우리 고전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밝혔다.작업은 김홍도와 신윤복, 정조 등 당시 그들의 꿈과 희망,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화병에 꽂힌 백합꽃과 향로, 촛대 등은 문헌자료를 탐독하고 미술사학자를 만나 조언을 받는 과정을 거쳐 투입됐다.“그림에 자주 보이는 백합의 의미는 내가 추구하는 진정성과 순수함의 상징이고 병에 든 날개는 꿈을 펼치지 못한 예술가들의 영혼을 투영한 사물이다. 해골은 죽음과 존재를 비롯해 모든 유한함의 상징이다.”문이나 창, 거울 등은 또 다른 세상을 보기 원하는 자신의 마음이다. “일종의 환영 같은 것”이라고 했다. 실내 풍경은 화가로 사는 삶과 정신세계,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 풍경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세계다.남경민은 이번 작품에서 원근법이 아닌, 한국화에서 찾을 수 있는 다시점(多視點) 구도를 사용했다. 대부분의 사물에 입체감을 표현하는 명암이나 그림자도 생략했다. 전시는 ‘풍경 속에 머물다’란 제목으로 12월 19일까지지 열린다. 02-736-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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