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낮 12시 19분께 대구시 중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강모(47·달서구)씨는 계속 걸려오는 전화에 휴대폰을 아예 꺼버렸다.강씨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급성백혈병으로 아들이 병원에 입원했지만 돈이 없었던 그는 한 대출사이트를 통해 400만 원을 빌릴 수 있었다. 대구은행 체크카드 뒷면에 비밀번호를 적어 빠른 등기로 보내주는 것과 3% 상환이 조건이었다. 돈은 카드가 도착하는 즉시 입금됐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휴대폰으로 부터 문자가 왔는데 내용은 3000만 원이 대출됐다는 것이다. 급히 상황파악에 나섰으나 대출업체는 이미 잠적한 뒤였다.강씨는 “카드와 비밀번호를 안다고 해서 통장 계좌번호까지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며 “잔액조회와 거래명세서 등에도 계좌번호가 나와 있지 않아 방심했던 게 실수였다”고 말했다.최근 체크카드(현금카드)와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조건에 대출을 해주는 신종 사기업체가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알고 보니 일부은행의 ATM기에서 계좌번호를 알 수 있다는 점을 노린 범죄였다.27일 오전 11시 42분께 대구 중구 대구은행 동성로지점의 7대의 ATM기에선 많은 사람들이 은행거래를 위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현금을 찾는 경우였으며, 일부는 누군가에게 돈을 이체했다. 통장의 계좌번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거래명세서에도 없었으며, 잔액확인을 할 경우에도 통장의 계좌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곳은 예외였다. 바로 거래내역조회였다. ATM기 7대 모두 거래내역조회를 확인해보니 버젓이 통장 계좌번호가 그대로 노출됐다. 이곳만이 아니다. 다른 지점의 대구은행 역시 대부분의 ATM기에서 거래내역을 조회하면 그대로 통장 계좌번호가 보였다.농협중앙회와 단위농협에서도 상당수의 ATM기에서 거래내역조회 시 통장의 계좌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급여통장을 비롯해 모든 은행거래를 대구은행으로 한다는 김수연(33·신암동)씨는 “설마 ATM기에서 계좌번호가 모두 노출될 줄은 몰랐다”며 “이런 허술한 관리시스템으로 고객의 정보를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의심스럽다”고 했다.고객의 은행거래 편의성을 위해 개발된 ATM기는 온라인으로 연결돼 모든 은행거래가 가능하다. 즉 ATM기의 보안에서 비롯된 거래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거래명세서, 잔액확인 등 모든 곳에서 계좌번호가 보이지 않는 이유 역시 고객의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서다.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등에서 고객의 계좌번호를 가상번호로 보이게 하는 이유 역시 이런 것에서 비롯됐다. 결국 ATM기에서 고객의 계좌번호가 그대로 노출되면 금융범죄는 그만큼 더욱 쉬워 질수밖에 없다는 것이다.ATM기를 개발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모든 은행거래가 계좌번호로 이용되기 때문에 은행에선 보안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며 “계좌번호가 유출될 시 통장을 바꾸는 이유도 이런데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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