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과 올해 초 부성애가 화두였다. 1400만명이 넘게 본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의 ‘헌신적인’ 아버지가 상징이다. 5년 만인 6일 개막한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속 ‘경숙 아베’(김영필)는 결이 다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버리고 혼자 피난길에 나선다. 자신을 붙잡는 ‘경숙 어메’(고수희), ‘경숙이’(주인영)에게 집이 우리의 전 재산이라며 잘 지키라고 한다. 더구나 “너희는 둘, 나는 혼자. 내가 더 외롭다”고 눙친다. 그뿐만 아니다. 거제도 수용소 동지라며 ‘꺽꺽이 삼촌’(김상규)을 데리고 와 집에 놓아두더니, 또 홀로 떠난다. 아버지가 없는데도 경숙 어메 뱃속에는 아기가 생긴다. 경숙 아베는 집에 왔다가 이 사실을 알고는 또 떠난다. 진상은 끝나지 않는다. 화류계 여인 ‘자야’(황영희)를 집에 데리고 오기까지 한다. 그리고 자야가 자신을 떠난 뒤 아내인 경숙 어메에게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린 뒤 마음을 아나”라고 절규한다.최근 ‘막장 드라마’ 못지않다. 황당한 설정에 헛웃음도 ‘빵빵’ 터진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싫은 아베지만 그만큼 아베가 그리운 경숙이 마음에 어느덧 동화가 된다. 아베의 ‘기행’에는 근현대사의 아픔이 관통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꿈을 꾸고 싶었지만 시대는 이를 허락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의 신식 교육, 한국전쟁의 당황스러움, 누구나 힘겨웠던 보릿고개…. 장구채를 자신의 가방에 두고도 찾아내라고 경숙 어메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가부장적인 경숙 아베에게도 벅찼다. 역시 장구 장단을 두들기는 자신의 아베, 즉 경숙 할베의 “니 인생의 장단을 두들겨라”라는 조언은 그저 허공의 메아리가 될 뿐이다. 경숙 아베가 등장할 때부터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의 ‘뽕짝’거림이 배경음악처럼 따라다닌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로 시작하는 이 곡은 한국전쟁 전후 당시의 아픔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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