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궁 복원은 새로운 경북의 700년을 이끌 핵심 문화콘텐츠다.경주시는 신라왕경 골격 복원을 통한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지난해 1월27일 시청 알천홀에서 ‘신라왕궁 복원·정비 추진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최양식 시장은 “경주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1971년 경주발전종합계획에 따라 많은 발전이 있었으나 현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융성시대를 맞아 경주는 제2의 도약기회가 찾아왔으므로 30만 시민이 하나로 단합해야 이 사업을 원만하게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발굴조사는 신라왕궁신라왕궁터를 학술적으로 연구해 신라왕궁을 복원하는데 목적이 있다.‘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8개 단위사업 중 핵심사업으로 현 정부의 공약사업이다.이 결과 신라 천년의 궁성, 찬란하고 웅장한 마지막 흔적의 모습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기초 시굴조사를 통해 발굴 대상 부지 상단 일부를 걷어냈을 뿐인데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토기와 기와들이 쏟아졌다. 신비의 베일을 벗고 있는 신라 궁성인 ‘경주 월성’(慶州 月城)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인 정밀 발굴조사로 전환된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2월 시작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 중앙지역 5만7000㎡에 대한 시굴조사 성과를 18일 현장에서 공개했다.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이뤄졌다.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연구소의 판단이다.조사지역에서는 기단, 초석, 적심 등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됐다.이 중 정면 12칸, 측면 2칸의 3호 건물지(28m×7.1m)는 적심 위에 초석을 올렸고 담장과 배수로가 딸려 있다.유물은 고배,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고 연구소는 소개했다.토기에는 ‘井’, ‘口’ 자 형태의 음각기호가 새겨진 것도 있고 월성의 해자와 안압지에서 이미 발견된 적이 있는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679년) 개토), ‘習部’(습부), ‘漢’(한) 자명의 평기와도 있다.경주 월성 조사는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 정체성을 규명하고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월성은 신라 천년 수도의 궁성(宮城)으로 서기 101년 파사왕(婆娑王)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였던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보관돼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국가의 중요시설로 알려져 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성과를 토대로 월성 정밀발굴조사로 전환하는 안건을 오는 20일 개최될 문화재위원회에 올린다.성공적인 조사를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서울 풍납토성과 경복궁, 익산 왕궁리유적, 강릉 굴산사지 등 주요 국가사적을 조사한 인력을 대거 투입해 조사단의 구성을 적극 지원했다고 밝혔다.발굴조사와 최신 ICT(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기록화연구(사진학·영상공학·측량학), 성벽 축조공법 연구(토목공학), 절대연대 연구(물리학), 고대 지역생태환경연구(지리학·생물학), 고대 토지이용전략 연구(지형학·도시공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융합연구가 병행된다.문화재 보존과 지역개발의 효율적인 갈등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굴조사 콘텐츠 관광자원화 연구, 현장중심 문화유산 교육과 활용 프로그램 개발연구 등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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