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성산면 삼대리에 소재한 ‘덩덤이 다리’(현 고령교)는 한국 토목 기술의 시초이자 전쟁의 아픈 역사와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다리다. ‘멍덤이 다리’가 있는 고령군 삼대리는 옛 성주군 소야면 지역으로 고종(광무) 10년인 1906년 고령군에 편입됐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반장동, 덕산동을 병합해 삼대동이라 해 성산면에 편입됐는데,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삼대1리는 삼산, 삼대와 낙동강 나루터 쪽에 자리 잡은 멍덤이, 질나루, 덕산포, 덕진, 도진이라 불리는 2개 자연 부락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고령교 서쪽 마을인 삼대리는 성산면 기산도요지와 사부도요지에서 생산된 질그릇을 덕산포를 통해 대구, 김해, 안동 각지로 반출해, 질나루 또는 도진이라 했고 마을 뒷산 이름을 따서 덕산 또는 덕산포라 불렸다. 한편 마을 동쪽은 낙동강가의 높은 절벽과 깊은 물로 돼 있어 멍덕미, 멍더미라고도 불려졌다. 대구 방면으로 건너가는 중요한 통행 역할을 한 고령군 삼대  ‘멍덤이 다리’는 6.25 전쟁 때  당시 끊임없이 남하하는 인민군의 낙동강 진출을 막기 위해, 미육군 공병대가 이틀간에 걸쳐 폭약 3000kg을 설치한 후 폭파했다. 1953년 현대건설이 회사 창립 후 최초로 교량 복구에 뛰어 들어, 적자를 남긴 다리로 현대 건설 시련의 본보기로 회자되는 다리이기도 하다. 당시 현대건설은 공사기간 26개월에 총공사비 5478만환으로 멍덤이 다리를 복구하고자 전력을 다했지만 열악한 장비, 물가 폭등, 낙동강 홍수 등으로 인해 참담한 실패를 거듭했다. 노임이 밀리고 자금압박이 계속되자 현대건설 임원들이 공사 중도 포기를 건의했지만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신용을 잃으면 사업가의 생명은 끝난다”며 빛을 내 다리 공사를 마무리했다. 멍덤이 다리(고령교)로 인해 현대는 7000만환이라는 막대한 적자를 냈고, 빚을 갚는데 2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후 정주영 회장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 정부가 2억3000만환 규모의 한강 인도교 공사를 맡겨 현대그룹이 급성장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고령군 멍덤이 다리는 고령군과 대구의 선남선녀들이 만나 서로 사랑을 꽃피우는 오작교의 역할을 했다.  청춘남녀가 만나 ‘몰래한 사랑(?)’ 다리로도 유명한 멍덤이 다리는 6.25 때 폭파된 후 서로 만나지 못해 고령군에서 대구쪽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애끓는 마음을 표현한 다리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전쟁의 아픔과 교량 복구의 사연, 청춘남녀의 사랑을 표현한 ‘멍덤이 다리’ 사연들이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멍덤이 다리에서’라는 노래가 나오게 됐다.김양수/ 김영식기자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