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작가 유익서가 장편소설 ‘세 발 까마귀’를 펴냈다. ‘옻칠회화’라는 특별한 소재를 바탕으로 쓴 예술가 소설이다.옻칠회화는 몇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옻칠공예에서 약 20년 전에 독립한 순수한 회화 장르다.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파렴치한이 된 남자 ‘강희’가 절망감을 예술로 승화시킨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이야기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강희가 무작정 작은 항구도시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자살을 망설이다가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화가 자신의 것은 없는 모방작이라며 험담을 퍼붓는다.때마침 옆에 있던 그림의 화가이자 미술관 학예사인 손수나는 그의 이야기에 분개하며 속으로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옻칠미술관 관장이 강희에게 옻칠 공부를 제안하면서 그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강희 역시 옻칠회화의 마력에 빠져 자살하려던 계획이 무산된다.옻칠미술관 관장은 옻칠공예의 전통 계승과 옻칠회화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 미술관을 건립했다. 강희는 이념이나 사상은 몇 천 년의 수명을 누리며 인류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지만, 500여년 이상의 수명을 누려온 그림은 몇 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림의 수명은 왜 짧은지 깊은 사색에 빠지며, 천 년 후에도 부끄럽지 않고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을 그려내야겠다고 결심한다.옻칠회화만의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현해내기 위해 그는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낸다. 저자는 소설에서 옻칠회화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의 참의미를 묻는다. 돈을 행복의 지표로 삼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직업의 의미와 함께 ‘예술가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묵직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228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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