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독서가 취미다. 서점을 둘러보며 주말에 읽을 책을 골라사서, 집에 가서 빳빳한 책을 펼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책을 펼칠 때마다 휘어져서 덜렁거리는 띠지. 이 물건은 버려야 하는 걸까, 모아야 하는 걸까. 이번달 초 인터넷 ‘오늘의 유머’ 사이트엔 ‘책 띠지를 발명한 놈은 전 인류에게 죄를 진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적혀 있는 문구는 있으나 없으나 그닥 상관없는 내용’, ‘띠지 혼자 중력에 이끌려 허공답보를 한다’는 불만이다.◇띠지, 언제 어디서 왜 시작됐나? 국내 1세대 북디자이너인 정병규 씨는 세계에서 띠지가 처음 시작된 곳은 프랑스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대부분이 잘못 알고 있지만 띠지는 프랑스가 원조”라면서 “기출간된 책이 공쿠르상이나 노벨문학상 등을 타면 그 책에 주로 빨간색의 띠지에 공쿠르 수상 등의 홍보문구를 넣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이나 유럽에서 책 띠지는 잘 쓰이지 않는다. 정병규 씨는 “서구에선 예술적으로 표지를 잘 만들어놓고 또 띠지를 두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병규 북 디자이너는 “우리나라에선 1977년 한수산 작가의 ‘부초’에 둘러진 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띠지”라고 말했다. 한수산이 책 발간 후 1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자 이를 붉은색 띠지에 넣어 알렸다는 것이다. 기존엔 1990년대 초 김영사가 일본의 띠지 광고를 국내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디자이너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1977년 한수산의 ‘부초’를 내가 표지 디자인했고 빨간색 띠지도 내가 디자인해 둘렀다. 이미 김영사보다 10여년 앞서 띠지가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띠지엔 주로 유명인의 추천사, 수상 경력, 영화화된다는 소식, 베스트셀러 몇 위, 몇만부 돌파 등의 문구 혹은 책의 일부가 인용된다.한 출판편집자는 “마케팅이 우선적인 목표지만 독자에게 책에 관해 줄 수 있는 정보를 주는 의미도 있다”면서 “책 표지는 책 제목과 글쓴이, 1~2줄의 카피 밖에 정보를 담을 공간이 적어서 띠지를 둘러 추가적 정보를 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저자보다 유명한 다른 사람의 추천사나 상업적 멘트는 홍보효과가 좋지만 그렇다고 책에 공헌한 건 아니기에 띠지에 넣는다는 것이다. 띠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도 있다. 정병규 북 디자이너는 “일본 디자인의 과도한 장식주의와 일본식 출판 상업주의를 무분별하게 도입한 것이 띠지”라며 “띠지가 출판사에 도움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디자이너는 “몸체인 책은 멀쩡하지만 띠지만 훼손돼도 책을 안 사는 독자들이 많아 띠지를 추가로 인쇄해 영업부에서 일일이 다시 갈아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2011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7%는 띠지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띠지의 활용에 대한 질문에는 ‘즉각 버린다’가 39.1%, ‘보관하다 찢어지면 버린다’가 13%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책에 둘러 보관한다’ 23%, ‘책갈피로 쓴다’가 14%였다. ◇불편하지만 마케팅 효과높아…따로 수집하는 사람까지 하지만 띠지는 실용적인 의미 뿐 아니라 수집가들의 취미를 위해서도 존재한다.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띠지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으며 책 수집가들 사이에선 귀중한 초판본이더라도 띠지가 없으면 책의 가치가 줄어든 것으로 본다.‘종이 낭비’와 ‘과도한 장식주의’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들은 출판계가 따로 홍보를 할 수 있는 매체가 없다는 절박한 이유에서 띠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띠지에 들어가는 종이의 분량은 실제 얼마 되지 않는다. 5000부를 인쇄한다 해도 종이값은 10만원도 들지 않고 총 20~30만원 내에서 띠지 관련한 모든 비용을 낼 수 있기에 들이는 비용 대비 광고효과가 좋은 편이다. 띠지는 또한 디자인적인 감각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진명 작가의 ‘나비야 청산가자’(북스캔), 터키를 대표하는 작가 오르한 파묵의 ‘하얀성’(문학동네) 등은 세로 띠지를 시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책 전면의 20~30%를 차지하는 띠지의 면적은 최근 점점 넓어지는 추세다. 일부 책은 책 면적의 70%정도까지 차지할 정도로 띠지의 면적이 넓어졌고 독특한 물성을 느낄 수 있는 고급스런 재질을 쓰기도 한다.띠지에 인쇄된 문양을 모아 암호를 풀면 상금을 주는 출판사의 이벤트와, 독특한 내용을 숨긴 띠지도 등장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패러디 소설인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해냄)는 표지엔 아름다운 여성의 그림이 있지만 가운데 띠지 뒤의 이 여성의 입부분과 목은 뼈가 드러난 흉측한 좀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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