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과 그의 신하들의 정치 문답을 모아 만든 ‘정관정요’에는 창업과 수성에 대한 유명한 문답이 등장한다. 당태종은 어느 날 신하들에게 물었다. “한 나라를 창업하는 것이 더 어려운가 아니면 수성하는 것이 더 어려운가?” 이에 대해 당태종의 창업을 도왔던 신하 방현령은 창업이 어렵다고 답했고 창업 이후 기용돼 나라의 안정을 도왔던 위징은 수성이 더 어렵다고 답했다. 신하들의 논쟁을 지켜보던 당태종은 둘 모두의 주장을 인정하며 이렇게 정리했다. “현재 창업의 어려움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세워진 제왕의 사업을 유지하는 어려움은 마땅히 신하들과 신중히 상의해야할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되는 당태종이 인정했듯이, 이처럼 예로부터 나라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은 어렵고 중요한 과업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나 하듯 역사 속 수많은 나라가 선대의 번영을 유지하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칭기즈 칸이 세운 몽골 또한 비슷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칭기즈 칸 사후 그 넓은 영토에 걸친 제국을 어떻게 수성해낼 것인지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됐던 것이다. 그때 그 문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 바로 쿠빌라이 칸이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쿠빌라이는 거대한 몽골 제국을 지켜나갈 시스템을 설계한 뛰어난 전략가였다. 세계를 정복한 것은 칭기즈 칸이었지만, 제국을 통치한 것은 쿠빌라이 칸이었다. 책 ‘수성의 전략가 쿠빌라이 칸’은 바로 그런 쿠빌라이 칸의 삶과 시대를 복원해낸 책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모리스 로사비는 유라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던 자료를 종합하고 분석해 쿠빌라이의 뛰어난 통치술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로사비의 손에서 재탄생한 쿠빌라이는 역사상 최대 영토에 통치 시스템을 만들었던 문명의 설계자였다. 제국을 세운 것은 칭기즈 칸이었지만 제국의 완성은 쿠빌라이의 손에 달려있었다. 이처럼 어쩌면 정복보다 더 어려운 과업에 직면해 지속적인 성공의 기틀을 다졌던 쿠빌라이를, 이제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강창훈 옮김, 480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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