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 원작의 콘셉트만 따온 영화였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는, 벤자민 버튼이 노인으로 태어나 시간이 갈수록 어린아이가 된다는 설정을 공유한다. 다른 건 정신연령의 흐름. 피츠제럴드는 벤자민 버튼이 태어날 때부터 외모가 노인일뿐 아니라 정신상태도 노인으로 설정했다. 이 판타지가 만들어내는 아이러니가 원작의 핵심이다. 핀처 감독은 외모의 변화만 역방향으로 흐르게 하고 정신은 정방향으로 흐르게 했다. 시간의 흐름이 반대이기에 엇갈리는 남녀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한 여자를 잊지 못하는 남자라는 평범한 이야기에 점점 젊어지는 브래드 피트(벤자민 버튼)의 외모를 볼거리로 제공한 영화였다.’뷰티 인사이드’(감독 백종열)는 ‘벤자민 버튼’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 얼굴이 바뀌는(’벤자민 버튼’에선 얼굴이 젊어지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이 남자와 사는 여자의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백종열 감독은 꽤 흥미로운 판타지를 평범한 멜로로 만들어버렸다. ‘뷰티 인사이드’는 제목 그대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는 게 진짜 사랑이라는 메시지 주변을 러닝타임 내내 맴돈다. 영화는 얼굴이 변한다는 판타지를 확장하려고도, 파들어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진은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자고 일어난 뒤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 걸 알게된다. 이후 우진은 잠에서 깨면 남녀노소,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얼굴이 변하는 현상에 시달린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던 우진은 가구점 직원 이수에게 반하고, 용기를 내 그녀에게 다가간다. 우진은 잠을 자지 않고 얼굴을 유지하지만, 사흘을 버티지 못한다. 결국 우진은 자신의 정체를 이수에게 드러낸다.‘뷰티 인사이드’는 아름다운 영화다. 관객은 아마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영화가 매우 공들여 촬영됐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최정상급 CF 감독으로 활약한 백종열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마치 한 편의 광고같다. 우진이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도망쳐 나오는 첫 장면부터 우진의 과거, 우진의 작업실, 이수와 우진의 만남, 이수가 일하는 공간, 우진과 이수의 데이트, 두 사람의 이별과 재결합 등 그 모든 신과 시퀀스가 하나의 연결성을 가진 각각의 CF 같다. 카메라로 어떤 공간을 담을 것인지, 그 공간 안에는 어떤 소품을 배치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공간을 오갈 인물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백종열 감독은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듯하다. 극 중 인물이 커피를 마시면 커피 CF, 초밥을 먹으면 초밥 CF, 침대에 누우면 침대 CF로 보이는 게 ‘뷰티 인사이드’다.하지만 ‘뷰티 인사이드’의 서사는 단순하고 얕다. 그래서 전진하지 못한다. 우진의 일상과 과거가 소개된 뒤 그는 사랑에 빠지고, 사랑이 이뤄지지만 외모 변화로 인해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그리고 남녀는 재결합한다. ‘뷰티 인사이드’는 관객이 예상한 그대로 흘러간다. 이 서사를 채우는 건 우진의 얼굴 변화로 인한 에피소드와 ‘난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류의 뻔한 대사들이다. ‘물론 상대의 내면을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메시지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모든 멜로영화는 대부분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진짜 문제는 이야기가 메시지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매일 얼굴이 바뀌어도 사랑은 지속될 수 있는가’로 유발된 궁금증이 ‘내면을 사랑하면 가능해’란 답에 도달하는 수단이 생략돼 버렸다. 영화는 ‘내면을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이기 때문에 내면을 사랑해야 한다’고 주문처럼 동어반복만 한다. ‘변신’이라는 콘셉트에 대한 연출자의 고민이 느껴지지 않으니 우진과 이수의 사랑은 그리 감동적이지 않다.영화는 ‘외모 보다는 내면을 사랑해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준비하고 성급하게 결론을 낸다. 그래서 스스로를 정답 안에 가두고 말았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