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나 일본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친 덕혜공주(德惠翁主·1912∼1989)의 유품이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덕혜옹주의 유품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 유물로 복식사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입니다.”최종덕 국립고궁박물관장은 25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에서 열린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지난 2012년 덕혜옹주 탄생 100주년을 기해 열린 특별전에서 국내에 처음 공개됐지만, 순수 기증 형식으로 완전히 돌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24일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으로부터 기증받은 덕혜옹주(1912-1989년) 유품 7점을 25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에서 특별 공개한다.‘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에서는 덕혜옹주가 입었던 어린이용 당의(唐衣)와 스란치마, 돌띠 저고리와 풍차바지, 속바지(단속곳), 어른용 반회장(半回裝)저고리와 치마 등 총 7점의 복식을 선보인다.안보라 학예연구사는 “7점의 복식은 어린이용 복식 5점과 성인용 복식 2점으로 구성돼 있다”며 “모두 일본에 머물 당시 남긴 유품이다. 1980년대 국내 연구자들에 의해 덕혜옹주 유품이 조사됐고, 이 때 처음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8년과 2009년 2차례에 걸쳐 일본 현지 조사가 실시됐고 상세한 연구를 바탕으로 2012년에 덕혜옹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이 열려 옹주의 유품들을 처음으로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으로부터 기증받은 후에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으로서 처음 선보인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덕혜옹주는 조선 제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 초대황제인 고종이 환갑을 맞은 1912년에 낳은 딸이다. 어머니는 궁녀 출신 복녕당(福寧堂) 양귀인(梁貴人)이다. 어머니가 정실이 아닌 까닭에 공주 대신 옹주(翁主)라는 호칭이 붙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는 대한제국 황손들의 일본 유학을 강제로 추진했다. 나라 잃은 설움 속에 덕혜옹주는 13살 어린 나이에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20살에 일본인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된 그녀는 치매에 걸려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병세가 악화되자 남편 다케유키는 이혼을 선언하고, 두 사람이 이혼한 후 딸 마사에는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실종된다. 이혼과 딸의 죽음 등 비극을 겪은 그녀는 1962년 우여곡절 끝에 고국 땅을 밟았다. 창덕궁 낙선재(樂善齋) 권역의 수강재(壽康齋)에서 기거하다 1989년 7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최 관장은 “덕혜옹주는 고종이 환갑 때 본 고명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공주”라며 “일본 측 요구로 강제 유학을 떠난 덕혜옹주는 일본인과 정략결혼했으나 치매를 앓는 등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이어 “이번에 돌아온 옷가지는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 때 남긴 조선왕실 복식 중 일부”라며 “이 복식들은 남편 소 다케유키(宗武志)가 덕혜옹주와 이혼하면서 영친왕 부부에게 돌려보낸 것으로, 이듬해 영친왕 부부가 문화학원의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 학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에게 기증하면서 일본에 남았다. 이후 1979년 개관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에서 꾸준히 소장해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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