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를 배웠던 청년은 대학시절 인사동에서 만난 전각을 보며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글씨를 쓰는 가운데에서도 전각에 매진했고 불교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문학을 파고들었다. 또한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을 만나 참선화두로 마음공부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청년의 이런 삶의 흔적은 전각과 글씨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통도사성보박물관 최두헌 학예사가 첫 전각 전시를 연다. 경주시의 후원으로 오는 13일까지 경주 예술의 전당 지하 1층 소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25점의 전각과 서예 작품을 선보인다. 최두헌 작가는 “선승들의 진영과 법어를 돌에 새기고, 벽암록 구(句), 선승들의 시(詩), 도가의 무위(無爲) 등을 주제로 도장, 인장, 낙관 등을 작품화 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전각이라는 예술의 무한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취지를 설명한다. 작가는 전각예술은 오직 인면(印面)안에서 사투를 벌이고 그 안에서 정신적 응집을 돌출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돌 위에 선사들의 말씀이나 조형적 예술미를 칼질하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다. 온 우주를 한 치의 방촌(方寸)안에 모두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희열과 기대감이 먹물의 번짐만큼이나 짜릿하다. 지금 본인의 전각은 방촌 안에서의 문자유희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색을 해나가는 중 이다”고 말했다.매화나무를 연상케하는 ‘세계일화’(無求備齋)는 낙관과 먹의 번짐을 조화롭게 배치시켜 눈길을 끈다. 낙관을 찍어 그 위에 먹물을 흘리니 나뭇가지가 형성되고 이는 흡사 통도사의 홍매화를 보는듯 하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고 우연의 효과로 탄생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붉은 낙관을 찍고 그 사이로 먹을 흘리니 이는 매화나무 같이 보이기도 하는데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연기적 세계관을 말한다. 그래서 그 제목을 세계일화라고 했다”갖추지 않은 집을 의미하는 ‘무구비재’(無求備齋)는 그의 은사인 동국대 한문학과 김종진 교수가 작가에게 지어준 당호(堂號)를 작품으로 옮겼다. 이 당호는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란한 욕심이 생기고, 배고프고 추우면 도(道)의 마음이 생긴다네. 비우고 또 비우고, 구하지 말고 또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만이 이 집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최두헌 작가는 “세상은 모든 걸 갖추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비우고 비워서 갖추지 않는 집을 지으라는 뜻이죠. 스승님께서 진정한 세상의 주인은 세상을 품어야지 일물(一物)을 갖추려고 아등바등하지 말라 하셨다. 처음 당호를 받았을 때는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 뜻을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경종 대종사의 진영과 함께 새겨진 오도송도 인상적이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 앞에 바로 주인공의 집이 보이네/ 하하! 이제야 만나 의혹이 없으니/ 우담바라 빛이 온 세상에 흐르네’라는 의미의 이 오도송은 의미 없이 무엇인가를 찾아다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작가는 앞으로 벽암록 100개의 화두를 서예로 옮긴 작품 전시는 물론 이를 책으로도 펴낼 계획이다. 또한 평소 존경하는 스님들의 작품도 전각으로 새겨나간다. 최두헌 작가는 동국대 한문학과졸업,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으며 부산대 대학원 한문학과 박사를 수료했다. 한국전각학회 회원, 부산전각학회 회원, 통도사 성보박물관 문화센터 전각반 강사, 울산대 미술대 동양화과 강사로 통도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1588-4925번으로 하면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