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기 좋은 명소 남산 반곡지물과 왕버들, 하늘이 만나는 곳한가로운 농촌마을의 작은 저수지와 둑을 가득 메운 아름드리 왕버들, 푸른 하늘이 배경이 돼 주는 곳. 반곡지는 꽃 피는 봄부터 눈 내리는 겨울까지 어느 한 철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다. 수백 년 된 왕버들 20여 거루가 줄지어 선 150m 가량의 나무터널 흙길을 걷다보면 한적한 농촌의 정취와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제2의 청송 주산지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반곡지는 경산지역 사진작가들이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인터넷에 올려 진 사진을 본 전국의 사진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서 2011년 3월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로 선정됐으며 지금은 사진애호가뿐만 아니라 연인, 가족나들이객 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2013년 10월에는 안전행정부의 ‘우리마을 향토자원 Best 3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도동재 (남산면 하대3길 13-6)신라 10현이자 이두문을 집대성한 설총선생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원래 여천동에 선생의 가묘가 있었다고 하나 관리 소홀로 허물어져 1923년 경주인 이종호(李鍾浩)와 사림이 주축이 돼 도동재를 건립했으며, 매년 3월 첫 정일(上丁日)에 제사를 받들고 있다.▣조곡서원 (남산면 성산로 262)정조 18년(1794년) 고려후기 무신인 오성군(鰲城君) 안우(安祐)와 조선전기 문신인 문정공(文靖公) 안지(安止)를 배향하기 위해 남산면 분도등(芬道嶝)에 건립한 서원으로 정조 22년(1798년)에 사액을 받았으나 고종 5년(1868년) 서원철폐령 때 훼철된 후 지금의 자리에 두 신위를 모시는 충현사로 이건했다.▣삼성현역사문화공원(남산면 인흥리 257-13번지 일원)경산지역에서 탄생하신 三聖賢(원효대사, 설총선생, 일연선사)의 위대한 업적과 심오한 정신적 가치를 널리 알려 현대인들이 문화적으로 소통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성된 역사문화공원이다. 3개의 전시실과 수장고, 국궁장, 공연장, 피크닉장, 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신라통일의 호국불교 원찰 반룡사반룡사는 신라 무열왕 7년(66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며, 고려 초 원응국사(圓應國師)가 중창한 후 신흥암이라 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14년(1637년)에 자인현 복현 시 초대 현감으로 부임한 임선백이 허물어진 사지를 일으키고 계운, 명운승으로 해금 신당을 세우게 해 반룡사라 했다.1641년 금당을 복원한 이후 60여 년에 걸쳐 증·개축을 실시해 26동의 대가람을 완성했으나 1916년 화재로 완전히 소실된 후 거의 폐허화됐으며 대웅전 삼존불마저 급히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됐는데 1654년에 조성된 목조관음보살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9호)은 청도 대운암으로 옮겼으나 되돌려 받지 못했으며, 1641년에 향단목으로 조성한 아미타불은 1991년 10월 주지가 절을 비운 사이에 도난당하고 말았다.현재 반룡사에는 산신각, 용왕당, 요사채 등과 1998년에 중창한 대웅전, 석조관세음보살입상, 삼층석탑, 2007년에 조성한 누각, 2008년 10월에 중창한 천불전 등이 있으며, 사찰 남쪽에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하대에 걸쳐 조성된 100여점의 석조부재를 한곳에 모아 두었다설화에 따르면 만삭이 된 신라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가 남편 원효를 만나기 위해 초개사를 찾았으나 원효가 만나주지 않자 원효의 고향인 불지촌에서 설총을 출산한 뒤 주변 스님들의 안내로 반룡사에 머물게 됐는데 설총도 이곳에서 유아기를 함께 보냈다고 한다. 그때 신라 무열왕 내외가 몰래 경주에서 지금의 반룡사까지 와서 딸 요석공주와 손자 설총을 만났다고 한다. 신라왕 내외가 이 산을 넘어왔다 해 이름 붙여진 그 길을 지금도 왕재라고 부르고 있다.▣난포고택(용성면 운용로 792)경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된 난포고택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 도사로 전주를 방어했던 난포 최철견이 조선 명종 원년(1545년)에 지은 가옥이다. 현재 이 집에는 가경 14년(1809년)이라고 쓰여 진 막새기와와 순조 16년(1816년)의 중수상량문이 남아 있어 두 차례 보수공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정침, 아랫사랑, 중사랑, 방아실, 행랑채와 마판 및 사당 등이 고루 갖춰진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었으나 정침, 행랑채, 사당만 남아 있었으나 최근에 사랑채를 복원했으며, 2011년 한옥체험업으로 지정돼 숙박체험도 가능하다.▣용산산성(용성면 곡란리 산 78번지 일원)경북도 기념물 제134호로 지정된 용산산성은 해발 435m인 용산 정상 아래를 둘러싼 형태의 산성으로 지금 남아있는 성의 총 둘레는 1481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1.5-2.5m이다. 동쪽성벽은 내외 2중 성벽의 형태를 취했으며, 성안에는 잡석과 흙을 다져 뒤채움을 했고, 회곡도로를 만들어 통행했다. ‘삼국사기’에 김인문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군주로 임명됐고, 장산성의 축조를 감독했다고 기록돼 있는데 ‘장산성’이 지금의 용산산성으로 파악되고 있으므로 이 산성을 축조한 연대는 삼국시대로 판단된다. 현재 산성은 2005년도부터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일부분이 복원·정비된 모습이다.▣관란서원(용성면 미산리 863번지)조선 현종 1년(1660년)에 자인 사람들의 공의로 회재 이언적의 도덕과 학문을 추앙해 서원을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숙종 41년(1715년)과 영조 19년(1743년)에 묘우(廟宇)를 중수했으며, 고종 5년(1868년) 서원철폐령 때 훼철된 후 서당으로 명칭을 변경해 위패를 묻고 단(壇)을 세워 제향하면서 유생들의 학문을 닦는 곳으로만 사용돼 왔다. 서원의 내부구조는 강당과 강당의 북서쪽 뒤편의 사당이 배치된 형태로 2004년 복원된 사당인 안인사(安仁祠)에 이언적의 위패가 배향돼 있으며, 1년에 한번씩 9월9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육동미나리단지(용성면 가척리,대종리, 용천리, 용전리, 부일리 / 053-852-1902)용성면 육동지역 6개 마을, 18농가, 5㏊에서 생산되는 청정미나리는 속이 꽉 차고 줄기가 굵고 길며, 줄기 하단부분은 자주색을 띠는데 맛과 향이 특히 뛰어나다. 매년 1월말부터 4월 초까지 출하되며, 농장 직거래와 택배주문도 가능하다. 주말이면 도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사적 제516호)사라진 고대왕국. 압독국의 흔적을 찾아서영남대학교 앞 임당동과 조영동, 압량면 부적리 일대 구릉지대에는 밑지름 20m, 높이 4m에 이르는 대형고분 30여 기(基)가 모여 있다.1982년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한 결과 1500여기에 달하는 무덤(古墳)과 토성(土城), 집자리, 소택지(沼澤地)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遺構)가 발굴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유적에서는 금동관을 비롯한 화려한 장신구, 다양한 형태의 토기, 말갖춤·무기·농기구 등의 쇠로 만든 철기(鐵器), 압독 사람들이 먹었던 조개, 물고기뼈, 동물뼈, 과일의 씨앗 등 2만점이 넘는 엄청난 유물이 쏟아졌다. 유적은 대체로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 경까지 지속됐으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고대 압독국(押督國)의 중심지였음이 드러났다. 현재 무덤 중 하나를 발굴당시의 모습 그대로 야외 박물관으로 만들어 무덤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고, 발굴모습과 출토유물 사진을 전시해 이해를 돕고 있다.흥미롭게도 압독국 유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임당동 고분에서 도굴된 유물이 해외로 밀반출되려다가 적발된 것이 계기가 됐다. 1982년 2월에 임당동 2호분에서 도굴된 은으로 만든 새날개모양 관장식(銀製鳥翼形冠飾)과 순금으로 만든 귀걸이, 은으로 만든 허리띠 등 중요한 유물들을 해외로 밀반출하려다 적발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를 계기로 도굴된 임당동 고분군이 발굴조사됐고, 공교롭게도 발굴된 은제 허리띠 일부와 당국에 압수된 허리띠가 동일한 것임이 밝혀져 도굴품이 임당유적의 것임이 증명됐다.▣경산 병영유적(사적 제218호)과 마이지사적 제218호로 지정된 경산 병영유적은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압량주 군주로 있을 당시 이 지역의 방어와 삼국통일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군(州軍)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켰던 장소라고 전해오고 있는 곳으로 압량면 압량리와 내리, 진량읍 선화리 세 곳이다.압량리 유적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김유신 장군이 군사훈련을 시킬 당시 말에게 물을 먹였던 못이라 해 말못(馬池)이라는 이름이 전해오고 있는데 지금은 그 못을 마위지라 부른다.▣남매공원(남매지)1928년에 농업용저수지로 조성된 남매지는 최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본래의 목적과 함께 시민휴식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 5.6km 길이의 순환산책로와 5월부터 10월까지 운영되는 프로그램 음악분수, 고사분수, 수상광장, 세계연꽃식물원, 수생식물원, 관찰데크 등이 설치돼 있어 휴식 공간 및 생태관찰학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경산 신상리 고분군(진량읍 신상리 1050번지 일대)2003년 경부고속도로 확장 시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했으며 총 85기가 조사됐다. 이 고분군은 경산일대에 있었던 신라의 지방소국인 압독국(押督國) 또는 압량소국(狎梁小國)을 구성했던 세 개의 커다란 세력집단 가운데 하나인 마진량촌(魔珍良村) 유력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현재 한국도로공사에서 경산휴게소 이용객과 지역민들을 위해 고분공원을 조성,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뤄 주는 영험 많은 부처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은 통일신라시대 오악(五岳)의 중심인 팔공산 남쪽 관봉 정상에 조각된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으로 전체 높이 593.9cm, 무릎너비 319.6cm의 거불(巨佛)로 머리 위에 갓모양의 보개가 얹혀 있어 ‘갓바위 부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삼국시대 선덕여왕 7년(638년)에 조성됐다는 기록이 있으나 통일신라 8세기의 불상양식을 계승한 경주 석굴암 본존여래좌상(국보 제24호)의 자세와 수인, 조각기법을 따르고 있으며, 항마촉지인의 손 조각이 섬세하고 상체의 볼륨이 살아있는 점으로 보아 9세기 전반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영험이 많은 부처로 알려져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전설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에 세속오계를 지은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갓바위 부처를 만들었는데 밤마다 큰 학이 날아와 지켜주었다고 한다.1960년대 오악조사단이 불상을 조사할 당시 불상의 몸에 불을 놓아 상이 검게 그을린 채로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는데 이는 가뭄이 들면 불상의 몸에 불을 놓아 새까맣게 태우면 놀란 용이 부처를 씻기 위해 비를 내린다고 해 기우제를 지낸 것이라 한다.▣선본사와 삼층석탑 선본사는 갓바위를 관리하고 있는 조계종 직영사찰로 신라 소지왕 13년(491년)에 극달대사가 창건했다. 갓바위 부처가 있는 상단, 대웅전과 삼성각이 있는 중단(웃 절), 극락전이 있는 하단(본 절)으로 나뉘는데 본 절에서 관봉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삼성각과 대중공양간이 나오고, 여기서 30m 정도 올라가면 대웅전 사역이, 다시 5분 정도 올라가면 상단 갓바위 불상이 나온다.갓바위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우측으로 200m 정도 올라가면 4.6m 높이의 선본암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5호)이 있다. 간결하고 장중한 멋을 지닌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 중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도굴로 무너진 것을 1979년에 복원한 것이다.▣경산 원효암 마애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6호)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원효대사가 창건해 수도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원효암 뒤편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좌상으로 신라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삼각형의 누운 기둥바위 면에 얕게 감실을 파고 반양각으로 새겨진 이 불상은 높이 134cm로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돌보는 이가 없어 인근 무속인이 상호에 회칠을 해 그 형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적도 있었다.▣영남대학교 민속원조선시대 주거생활의 모습을 한눈에…1975년 영남대학교 내 2만여 평의 부지에 조성된 민속촌이다. 안동 수몰지역과 경주, 칠곡에서 옮겨온 6채의 전통가옥이 복원돼 있어 조선시대 다양한 계층의 주거생활의 모습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구계서원(龜溪書院)구계서원은 고려 말 유학자인 역동(易東) 우탁 선생을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원래 안동군 월곡면 미질동에 위치해 있었으나 1975년에 안동댐 건설로 인해 수몰됨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이건 당시에는 독역재(讀易齋) 밖에 없었으나 2000년 11월 27일 묘우(廟宇)인 묘현사(墓賢祠), 내삼문, 일신재(동재)와 시습재(서재), 대문인 진덕문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의인정사(宜仁靜舍)1887년 퇴계 이황 선생의 후손으로 진보현감을 지낸 이중철이 지은 집이다. 원래 이 집의 택호는 진보댁이었으나 1976년에 안동군 도산면 의인마을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의인정사라 했다. 모두 56칸으로 지어진 전형적인 안동 양반집으로 안채, 사랑채, 아래채로 구성돼 있다.▣쌍송정금혜(1399-1484년) 선생이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본가 옆에 서재로 지은 별당으로 약 300년 전에 다시 세운 것을 1975년 7월에 금혜 선생 후손들의 소개로 영남대학교로 옮겨왔다. 금혜 선생은 호를 쌍송정이라 하고 이 건물 앞에 용트림하는 소나무 두 그루를 심어 즐겼는데 쌍송정이라는 건물이름 역시 이로부터 유래됐다. ▣의성김씨 정려문철종 원년(1834년)에 의성 김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부인이 살았던 토계리에 정려문을 지어 주었으며, 2002년에 영남대학교 민속원으로 이건했다 의성 김씨는 퇴계 이황 선생의 후손인 이중건의 부인으로 남편이 오랫동안 중병을 앓다가 사망하자 3년 상을 마친 3일 후 남편을 따라 자결했다.▣화산서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0호)조선 효종 2년(1651년)에 만회당 장경우 선생이 후진양성을 위해 칠곡군 석적면 성곡리 화산(花山) 아래에 건립한 서당이었다. 헌종 6년(1840년)에 석적면 중리로 이건됐으며, 철종 4년(1853년)에는 화산서원으로 승원돼 만회당의 봉향지소가 됐다. 1989년에 화산서당의 강당과 대문채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0호로 지정되면서 1990년에 한차례 보수했으나 주변의 개발로 인해 건물이 쇠락하는 것을 보고 영남대학교가 2009년에 민속촌으로 이건 복원했다.▣경주맞배집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에 있던 집으로 1976년 황룡사지 발굴과 함께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왼쪽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순으로 “一”자 모양을 하고 있다. 맞배집의 특징 중 하나는 형식적인 공간 나눔을 철저히 줄이고 작은 공간에서도 여러 가지 기능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데 있다.▣까치구멍집1975년에 영양 남씨들이 모여 살았던 안동군 월곡면 도목동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경북 북부지역 산간촌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의 이 집은 소 마구간을 비롯한 모든 편의시설이 집안에 들어 있다. 공간이 닫혀 있어 오염된 공기는 지붕 양쪽에 공기 배출구를 만들어 뽑아냈는데 이 공기 배출구의 모양이 까치집처럼 생겼다고 해 까치구멍집이라고 한다.▣러브로드영남대학교 민속원 입구에서 우측으로 700m 정도 벚나무가 줄지어 선 오솔길이다. 연인이 함께 걸으면 반드시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러브로드’라고 불리게 된 이 길은 1970년 3월 당시 영남대학교 의상학과에 재직 중이던 안영주 교수가 기증한 벚나무 300그루로 조성됐다고 한다.▣영남대학교 박물관1층은 상설전시실로 고지도실, 조각공예실, 서화실, 전통문화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로비에는 높이 6m의 광개토대왕릉비문의 탁본이 원형 그대로 전시돼 있다.2층은 기증실, 학교사자료실, 임당유적특별실, 아트스페이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경산시립박물관경산의 뿌리를 찾아서...경산의 역사와 문화를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지난 2007년 2월에 개관했다. 상설전시실은 여느 박물관과 달리 경산의 근대모습부터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간여행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제1전시실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경산자인단오제(여원무, 자인팔광대)를 비롯해 농업생활, 세시풍속, 전설과 민담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남천면 송백리에 있는 민가 1채를 실물크기로 그대로 옮겨 복원전시하고 있어 경산의 근대 가옥구조와 주거문화를 실감할 수 있다. 또 옛 시골 장터의 모습을 매직비젼으로 연출해 5일장의 정겨운 풍경을 엿볼 수 있다. 그밖에 경산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민담을 마을의 주민들이 직접 이야기해주는 코너도 재미있다.▷제2전시실조선시대, 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의 경산을 만나는 코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인 서당, 향교, 서원을 소개하고 관련된 유물도 전시했다. 조선시대 경산의 현령이 현민들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땅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인 사직단을 발굴모습과 복원모습으로 재현했다. 또 임진왜란 당시 경산지역의 의병활동과 보물 제747호로 지정된 최문병 의병장 말안장이 전시되고 있다. 고려시대와 통일신라시대 경산지역에 꽃피웠던 불교문화와 아름다운 빛깔을 지닌 경산 출토 도자기(분청사기, 백자, 청자), 경산이 고향인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 원효, 설총, 일연 코너도 마련돼 있다. ▷제3전시실경산의 고대국가 압독국(押督國)의 성립부터 소멸까지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 조사된 유적과 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코너다. 압독국의 토기, 화려한 장신구, 말갖춤, 압독국의 타임캡슐 소택지(沼澤地), 음식문화 등 다양한 주제별 유물과 자료를 만날 수 있다. 또 압독국 최고 지배자의 무덤을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해, 유물의 출토모습과 순장풍속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압독국이 성립되기 전 경산지역에 터를 잡고 살았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경산 옥곡동 마을유적을 디오라마로 복원해 이해를 돕고 있다.상설전시실 외에도 경산의 숨겨진 문화자원을 발굴, 매년 다양한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열어 시민들의 문화 향수권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체험학습실은 상설 전시된 경산의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산시립박물관은 평생학습 기능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데, 매년 성인들을 대상으로 ‘박물관대학’과 ‘우리문화 특강’을 개최하고 있다. 또 초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어린이 박물관학교’도 운영되고 있어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경산향교 (경산시 향교길 14-19)경산향교는 고려 공양왕 2년(1390년)에 지금의 옥곡동에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여러 차례 다시 세웠는데 조선 숙종 7년(1681)에 신교동으로 이건했다가 1997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향교는 전학후묘형이 일반적인데 비해 경산향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앞에 두고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뒤쪽에 둔 전묘후학의 배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대성전과 삼문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9호로 지정돼 있다.▣경산공설시장 (경산시 중방동)상설시장으로 바뀐 지 오래지만 장날인 5일과 10일이면 많은 사람들로 더욱 활기를 띈다. 취급하는 품목도 다양하고, 인정 넘치는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시장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경산의 명물 납작 만두와 떡볶이, 순대, 호떡 등 각종 주전부리를 맛보는 재미 또한 일품이다.▣CW무비갤러리(경산시 강변동로 290 / 053-812-6543)세기의 명작 스타워즈를 비롯해 아이언맨, 트랜스포머 등 영화 속 히어로들을 만날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피겨 박물관이다. 사이드쇼의 프리미엄 군단과 실물 크기의 터미네이터 전신상부터 일반인에게 친속한 디즈니&픽사의 피겨 1만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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