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침묵의 시선’(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확신한다. 아마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중 ‘침묵의 시선’ 만큼 강렬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속 이미지, 대사, 정적, 벌레울음 소리 등 ‘침묵의 시선’ 속 모든 것들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헤매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뭔지는 모르지만 깊고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1965년 군부 정권은 그들의 통치에 반대하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다. 자그마치 100만명. 아디의 형도 그때 죽었다. 가해자들은 그들의 살인을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생각하지만, 피해자들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거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디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살인자들을 찾아가 묻는다. "저희 형을 왜 죽였습니까." 다른 설명 필요 없다. 올해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다. ◇즐겨요…‘기적의 피아노’(감독 임성구)몇 년 전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갖춰 ‘스타킹’ 등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예은이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방송 출연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기적의 피아노’는 장애와 그로 인한 좌절을 주제로 삼은 최루성 멜로 다큐가 아니다. 이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한 소녀의 고군분투기 정도다.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예은이와 그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연출자의 사려깊은 시각이 감동을 끌어낸다. ◇글쎄요…‘피케이:별에서 온 얼간이’(감독 라지쿠마르 히라니)역대 인도 개봉 영화 흥행 순위 1위에 오른 작품이다. 외계인이 지구에, 인도에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종교의 치부를 드러내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영화는 아니다. ‘별에서 온 얼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적 요소를 듬뿍 담고 있다. 풍자와 해학으로 상식적인 선에서 종교를 저격하는 영화로 보면 쉽다. 한국 관객의 정서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작품은 아니다.◇아니올시다…‘어바웃 리키’(감독 조너선 드미)이 시대 최고의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의 연기력을 굳이 ‘어바웃 리키’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그가 어떤 배우인지 알려주는 다른 작품은 널렸다. 무명 밴드의 보컬과 세컨드 기타를 맡은 인물로 출연하는 스트리프가 공연 장면을 라이브로 촬영했다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애초에 메릴 스트리프에게 불가능은 없다. 메릴 스트리프가 어찌 됐든 ‘어바웃 리키’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든 조너선 드미와 ‘양들의 침묵’을 만든 조너선 드미가 같은 사람이라니.◇즐겨요…‘미라클 벨리에’(감독 에릭 라티고)‘미라클 벨리에’는 따뜻하고 유쾌한 영화다. 성숙한 가족영화이고, 가족의 성숙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이 작품을 음악영화나 성장영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에릭 라티고 감독이 그리려는 큰 그림의 일부다. 딸은 꿈을 위해 가족의 곁을 떠나려 하고, 부모는 딸을 가족이라는 둥지 안에 품어두려고 한다. 청각장애인인 부모가 건청인 딸에게 “네가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실망했었다’고 말하는 건 그런 의미다. 이 영화를 성숙한 가족영화, 가족의 성숙에 관한 영화라고 하는 건 이들이 서로를 결국은 인정해 나가기 때문이다. ◇글쎄요…‘아메리칸 울트라’(감독 니마 누리자데)이른바 ‘병맛’ 액션은 영화의 한 장르가 됐다. 루저로 보였던 이들이 사실은 뛰어난 두뇌, 가공할 신체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혹은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있다가 그 능력을 깨닫는 형태의) 영화는 ‘킥애스’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로 이어지며 현재 가장 인기 있는 형태의 액션물이다. ‘아메리칸 울트라’도 이런 ‘병맛’ 액션영화 중 하나. 편의점 알바를 하고, 밤이면 약에 취해 있는 마이크는 사실 기억을 잃은 CIA 요원이었다! 초반부에는 즐길 거리가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는 뛰어나다.◇아니올시다…‘치외법권’(감독 신동엽)‘극악무도한 나쁜놈들은 법으로만 다스릴 수 없다’는 ‘치외법권’의 메시지를 이해 못할 건 없다. 우리는 자주 신동엽 감독과 같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화법은 실망스럽다. ‘치외법권’에는 결론만 있을 뿐 이야기가 없다. ‘치외법권’의 연출 방식은 극도의 단순화와 과장으로 인해 시대착오적이고 촌스럽게 느껴진다. 영화의 반복된 무리수는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해 뒷끝을 찝찝하게 한다. 임창정과 최다니엘의 코미디 연기에도 큰 감흥이 없다.◇글쎄…‘뷰티 인사이드’(감독 백종열)‘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변하는 남자와의 연애’라는 설정은 분명 흥미롭다. 이 설정은 그것만으로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하지만 관객을 극장에 오게 하는 것과 지루하지 않게 자리에 앉혀놓는 건 또 다른 이야기. 다시 말해, 콘셉트는 콘셉트일 뿐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힘은 결국 이야기에서 나온다. ‘뷰티 인사이드’는 서사가 빈약한 영화다. 제목이 이 영화가 말하려는 이야기 전부인데,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상투적이어서 심드렁하게 느껴진다. 얼굴이 변함으로 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글쎄…‘퇴마:무녀굴’(감독 김휘)관객이 굳이 돈을 내면서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딱 하나다. 무서우려고, 겁먹으려고, 긴장되려고, 오싹하려고, 기분 나빠지려고. 과장해서 말하면, ‘무서워라’는 공포영화의 정언명령이다. 공포영화는 이것만 잘하면 90%는 된 거다. ‘퇴마:무녀굴’이 아쉬운 점은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관객은 갖가지 자극에 길들어 있고, 이제 웬만한 소재나 방식으로는 관객의 말초신경은 꿈쩍도 않는다. ‘퇴마:무녀굴’은 관객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엄지 척!…‘나의 어머니’(감독 난니 모레티)난니 모레티가 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이고, 왜 거장이라 불리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레티 감독은 죽어가는 어머니와, 어머니와의 예정된 이별이 애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을 살아야 하는 딸의 일상을 담담한 필치로 보여주며 관객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난니 모레티는 딸의 일상을 보여준다. 일도, 사랑도, 자식도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상과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또 다른 일상, 이게 전부다. 모레티 감독의 연출에는 자극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일상 자체와 결국 어머니에게 마음을 기대려는 딸의 모습을 통해 자연스러운 감동을 만들어낸다.◇즐겨요…‘앤트맨’(감독 페이튼 리드)몸이 1.27㎝로 작아지며, 개미들을 몰고 다니는 영웅이 주인공이다. 마블의 또 다른 히어로 무비 시리즈 중 하나. 기존의 어벤져스와 함께 앞으로 펼쳐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일원이 될 것이다. 이 영화, 일단 재밌다. ‘앤트맨’의 즐길 거리는 두 가지다. 유머와 액션. 최근 마블의 영화 중에 관객을 이렇게 대놓고 웃기려고 한 영화는 아마 앤트맨이 유일할 것이다. 유머의 타율도 꽤 높다. 영화의 분위기 자체가 시종일관 유쾌해 ‘앤트맨’을 부담 없이 즐기게 한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거치며 커지기만 했던 액션 장면의 스케일은 ‘앤트맨’에서 극도로 작아진다. 클라이맥스 액션이 펼쳐지는 장소가 장난감 토마스 기차 철로 위다. ◇엄지 척!…‘베테랑’(감독 류승완)말 그대로 유쾌한 영화다. 류승완 감독은 러닝타임을 흥겨운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마치 탄산이 들어있는 듯한 이 에너지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적절한 완급 조절의 연출력을 만나 스크린 밖으로 분출한다. 멘토스와 코카콜라랄까. 생각을 해야 하는 영화도 아니고, 감정을 소모하는 영화도 아니다. 그저 영화의 속도감에 몸을 맡기고 즐기면 된다. ‘베테랑’은 무엇보다 배우를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등 출연 배우 모두가 역할에 맡는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엄지 척!…‘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감독 크리스토퍼 매쿼리)고민의 여지 없이 추천할 수 있다. 물론 첩보액션영화로서 과거 ‘본’ 시리즈나 최근의 ‘007’ 시리즈(특히 ‘스카이폴’)가 보여준 깊이에는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영화는 여름 블록버스터로서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보여준다. 육·해·공을 넘나드는 톰 크루즈의 액션을 보고 있자면, 돈도 시간도 전혀 아깝지 않다. 이쯤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이 재미가 없을 리 없다.◇즐겨요…‘미니언즈’(감독 카일 발다, 피에르 코팽)‘인사이드 아웃’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거칠게 분류해서 ‘인사이드 아웃’이 어른들을 위한 영화에 가까웠다면, ‘미니언즈’는 아이들이 더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물론 주인공 미니언이 귀엽다는 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동의할 수 있다. 그 귀여운 맛에 보는 게 바로 이 영화다. 깊은 메시지나 통찰 같은 건 없다. 그저 낄낄 대다가 나오면 된다. 신기한 건 미니언에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는 것. 자꾸 떠오른다. 그러다가 미니언 피규어가 탐나 맥도날드에 가 해피밀을 시켜먹게 된다.◇즐겨요…‘암살’(감독 최동훈)‘도둑들’(2012)이 1290만 관객을 불러 모았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흥행이라는 측면에서 모든 걸 이룬 감독이 전작과 비슷한 방식으로 또 한 번 영화를 만드는 건 무의미한 일이고, 그것은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한 창작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최동훈은 변하고 있다. ‘변했다’라고 쓰지 않은 것은 ‘암살’이 최동훈 영화 변화 과정의 중간 단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암살’은 재밌는 영화다. 이 정도 할 수 있는 감독, 해외에도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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