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뒷짐 진 양반이 나타날 것 같은 솟을대문 종가집과 소담하게 이어진 초가집, 아름다운 솔숲 만송정과 깎아 지르는 듯한 부용대, 우는 아이도 웃게 만들 것 같은 하회탈까지 하회마을을 생각하면 수많은 ‘한국’의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경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위치한 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 류 씨가 600여년간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으로, 2010년 7월 우리나라에서는 10번째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하회마을의 독특한 유교 문화와 하회마을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를 높이 평가했다. 이번 하회마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하는 전통적인 한국의 삶, 그리고 오랜 건축물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화까지 인정받았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수많은 명신을 배출한 조선의 명지하회마을의 지형을 태극형 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낙동강 줄기가 이 마을을 싸고돌면서 ‘S’자형을 이룬 형국을 말한다. 강 건너 남쪽에는 영양군 일월산(日月山)의 지맥인 남산(南山)이 있고, 마을 뒤편에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花山)이 마을 중심부까지 완만하게 뻗어 충효당(忠孝堂)의 뒤뜰에서 멈춘다. 강 북쪽으로는 부용대(芙蓉臺)가 병풍과 같이 둘러앉아, 산천 지형 또한 태극형 연화부수형국을 이룬다.유성룡(柳成龍) 등 많은 고관들을 배출한 양반고을로, 임진왜란의 피해도 없어서 전래의 유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허씨(許氏) 터전에, 안씨(安氏) 문전에, 유씨(柳氏) 배판이라는 말대로 최초의 마을 형성은 허씨들이 이룩해, 하회탈 제작자도 허도령이었다고 하며, 지금도 허씨들이 벌초를 한다고 한다.화천(花川)의 흐름에 따라 남북 방향의 큰 길이 나 있는데, 이를 경계로 해 위쪽이 북촌, 아래쪽이 남촌이다. 북촌의 양진당(養眞堂)과 북촌댁(北村宅), 남촌의 충효당과 남촌댁(南村宅)은, 역사와 규모에서 서로 쌍벽을 이루는 전형적 양반가옥이다. 이 큰 길을 중심으로 마을의 중심부에는 유씨들이, 변두리에는 각성(各姓)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생활방식에 따라 2개의 문화가 병존한다.지금까지 보물이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은 양진당(보물 306), 충효당(보물 414), 북촌댁(중요민속자료 84), 원지정사(遠志精舍:중요민속자료 85), 빈연정사(賓淵精舍:중요민속자료 86), 유시주가옥(柳時柱家屋:중요민속자료 87), 옥연정사(玉淵精舍:중요민속자료 88), 겸암정사(謙菴精舍:중요민속자료 89), 남촌댁(중요민속자료 90), 주일재(主一齋:중요민속자료 91), 하동고택(河東古宅:중요민속자료 177) 등이다.양진당·충효당·남촌댁·북촌댁 등 큰 가옥들은 사랑채나 별당채를 측면으로 연결하거나 뒤뜰에 따로 배치하는 등 발달된 주거 구조를 보이고, 장대한 몸채·사랑채·많은 곳간·행랑채가 공통적으로 갖춰져 있다. 특히 사랑방·서실·대청·별당과 같은 문화적 공간을 지니는 점은,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일반 서민들이 소유한 최소한의 주거 공간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기품이 느껴지는 원지정사하늘에서 하회마을을 바라보면, 아담한 마을이 포근하게 물줄기에 감싸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물을 끼고 있어서 살기 좋은 마을로 도산과 하회를 최고로 친다(溪勝第一安東陶山 河回)’며, 하회마을을 길지로 꼽았다. 물이 돌아가는 아름다운 광경과 함께 하얗고 고운 모래가 펼쳐진 백사장과 은은한 안개 속 선계를 연상시키는 솔숲 만송정 등 하회마을의 자연 환경은 풍성한 유교문화를 꽃피우는 밑바탕이 됐다. 하회마을은 ‘살아있는 고(古) 건축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고택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와집 대부분은 풍산 류 씨의 고택들이다. 원래 허 씨들이 모여 살았다가 고려시대에는 안 씨들의 집성촌이었으나, 조선시대 초기 공조전서 류종혜가 입향한 뒤 약 600년 간 겸안 류운룡, 서애 류성룡 등 풍산 류 씨가 모여 살았다. 지금도 하회마을 주민 중 67%인 125세대가 풍산 류 씨다. 종가에는 보이지 않는 유교의 서열이 존재한다. 작은 아들은 종가보다 더 큰 집을 지을 수도 없으며, 가족들은 수많은 제사에 꼭 참석한다. 보이지 않는 문중의 문화야말로 건축만큼이나 중요한 하회마을의 유산이라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살아있는 고건축 박물관, 하회마을 하회마을에는 남북 방향으로 큰 길이 있는데, 이 길을 경계로 위쪽을 북촌, 아래쪽을 남촌이라고 부른다. 북촌에는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풍산 류 씨의 종택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넉넉한 양반집을 대표하는 북촌댁이 있고, 남촌에는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보물 제414호)과 남촌댁이 자리하고 있다. 위풍당당한 기와집에서는 고스란히 건물에 녹아있는 조선시대 양반의 위엄을 엿볼 수 있다. 수백 년 세월이 흐르면서, 그 꼬장꼬장함이 다소 누그러지기도 할 터인데 오히려 그 기세는 더 위력을 떨치는 것처럼 보인다. 충효당 뒤에는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을 비롯한 각종 유물이 보관돼 있는 영모각이 있다. 또한 건물 뒤편에 낙동강의 물돌이동을 그대로 닮은 신비로운 소나무가 있어, 충효당에 갈 때 한번 찾아보는 것이 좋다. 대갓집들은 사랑채나 별당채를 측면으로 연결하거나 뒤뜰에 따로 배치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문화적 공간과 주거 공간을 따로 설계하는 옛 어른의 지혜로움도 찾아볼 수 있다. 하회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삼신당에서는 우리의 오랜 민속 신앙을 살펴볼 수 있다. 삼신당은 마을의 신이 길들어 있는 곳으로,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가 행해진다. 수령이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 고목이 수 백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오늘도 든든하게 서 있다. 하회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힘찬 필치로 가훈을 써주는 서예가를 비롯해 철저히 유교 원칙을 따르며 생활하는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다. 하회마을을 더욱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흙으로 만들어진 담장과 담장 아래에 심어져 있는 키 작은 꽃들이다. 여유가 있다면 하회마을의 고택이나 민박에서 하룻밤 보내며, 찬찬히 걸어보다 보면 하회마을의 멋이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하회마을을 돌아본 후에는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부용대로 향한다. 부용대 가는 길에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옥연정사. 옥연정사는 서애가 임진왜란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는 ‘징비록’을 집필했던 곳으로, 영화 ‘스캔들’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옥연정사 옆에는 서애의 형님 겸암 류운룡의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서원 2층에 오르면 낙동강과 하회마을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화천서원을 나와 450보만 오르면 부용대가 나타난다. 부용대에 올라 거친 숨을 고르며, 겸암 류운룡이 강바람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만송정을 내려다보면 세상이 다 내것같은 기분이 든다. 부용대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류운룡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겸암정사가 보인다. 겸암정사까지 둘러봤다면, 다시 배를 타고 하회마을로 돌아와 하회별신굿탈 전수관으로 갈 시간이다.매주 수, 토, 일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12세기 중엽부터 상민들에 의해 이어진 별신굿탈놀이는 하회마을의 간판 프로그램. 부네탈, 양반탈, 중탈 등 각종 하회탈을 쓴 인간문화재들의 풍자와 해학이 들어간 공연이 차례로 오른다. 별다른 기교가 들어있지 않으면서도, 모두를 호탕하게 웃게 한다. 탈놀이에는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신명나는 탈놀이를 감상했다면, 하회마을의 마지막 코스, 탈 박물관에 갈 차례다. 2010년 5월에 확장 개관한 탈박물관은 세계의 탈을 다 모아놓아 볼거리가 풍성하다. 1층에는 탈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장도 있어, 자녀와 함께 하회마을을 여행하는 가족이라면 더욱 알찬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 고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병산서원, 질 좋은 안동한지의 제작과정을 볼 수 있는 안동한지전시관을 둘러보자. 혹시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안동시내에서 멀지 않은 제비원 석불과 우아한 월영교가 있는 안동댐도 찾아보자. 월영교 부근에는 헛제사밥으로 유명한 까치구멍집이 있으며 안동 구시장에는 맛있는 찜닭을 맛볼 수 있는 찜닭골목이 있으니 안동의 별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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