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무언가를 시작할 때 느끼는 설렘 속에 있을 뿐이다. 미즈키는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본 적 없는 세계가 열린다. 영화의 오프닝 롤 같다. 가슴 설레는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되려 하고 있다. 물론 대책 없는 졸작일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설렘은 역시 설렘으로,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에 아주 가까운 무언가였다."(183쪽)"나중이어도 괜찮지만, 가능하면 지금 여기서 대답해 주었으면 해요. 입으로가 아니어도 좋아요. 데즈카 씨네 커플이 없으면 애써 연인인 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지금까지대로 연인인 척 하기 신호를 해 줘요. 만약 지금부터 정식으로 사귈 거라면 손목을 바로 펴서 바이바이 손을 흔들어줘요. 알겠죠?"(115쪽)일본 작가 이시다 이라(55)의 첫 연애소설집 `슬로 굿바이`가 국내 번역출간됐다. 잡지 `소설 스바루`에 연재된 작품을 모아서 책으로 펴냈다. `슬로 굿바이`에 등장하는 연인들은 모두 20대다. 20대답게 화끈한 장면들도 많이 나오지만 끝맺음은 대체로 쿨하다. 사귈 때는 체취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딱 붙어 있었지만 헤어진 지 3주 만에 새 여자 친구를 만나는 가벼운 사이, 이유도 모른 채 이별을 통보받고도 왜냐고 묻지 않는 남자와 한참 후에야 그 이유를 말해주는 옛 여자 친구, 이름을 속여 말하고 닉네임으로만 대화하거나, 랜선 연애 혹은 가짜 연애를 하는 등의 독특한 소재들을 다루면서 다소 헐거운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현대 젊은이들의 삶을 소설에 녹여냈다. 작가는 어찌보면 서글프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독자들에게 무겁게 전달하지 않고 달달한 연애소설로 탈바꿈시켰다. 하나같이 익명 게시판에서 조회수가 꽤나 높았을 것 같은 연애 이야기들이다.권남희 옮김, 300쪽, 9800원, 예문사.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