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성 조문국(召文國) 박물관박제된 과거만이 아닌 살아있는 현재와 톡톡 튀는 소재를 가지고 2013년 4월 25일 관람객을 맞고 있는 의성조문국박물관!의성조문국박물관에는 본관 상설전시장, 별관 민속유물전시관이 있으며 인접한 조문국사적지 내 대리리 2호분의 유구를 재현한 고분전시관, 영천이씨 집성촌인 산운전통마을에 자연사를 소개하는 산운생태공원이 있다.금성산과 고총 고분이 즐비한 곳에 자리잡은 의성조문국박물관은 시간의 흔적들을 보여주는 나이테처럼 의성의 오랜 시간의 흔적들을 형상화한 건축물이다.본관 1층 어린이고고발굴체험관은 현재와 오랜 옛날 생활상을 비교해 보고, 국내 최초로 실내에서 고분 발굴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고고학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인간 중심, 의성·조문국 역사의 빛을 뿜어내다”라는 주제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의성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고 있는 2층 상설전시실의 전시구성은 역사의 빛, 의성인의 유래, 환경 변화에 따른 의성인의 생활사, 삼한시대 의성을 지배했던 조문국, 의성인의 찬란한 문화 유산 등으로 이뤄졌다. 의성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유사돌무지덧널무덤과 의성만의 독특한 특징이 나타나는 의성양식 토기,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集安)에서 출토된 관식(冠飾)과 매우 유사한 금동관 등 1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기존의 학술적인 문구의 딱딱한 박물관이 아니라 다양한 모형과 영상, 쉬운 설명들로 이뤄져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배려가 돋보인다.▣ 조문국 사적지한반도에는 대륙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유이민(流移民)들에 의해 삼한의 여러 소국들이 만들어 지고 토착민에 의해 만들어진 이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는데 하나는 고조선 계통의 이주민, 또 하나는 부여와 고구려 계통의 이주민으로 나눌 수 있다.우리나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로 의성지역에는 청동기 시대를 알리는 문화유적부터가 발견 됐다.삼한시대 의성에는 읍락국가인 무동이지(武冬彌知-의성군의 서부지역)와 조문국(召文國-의성군의 동부지역)이 있었다고 하며, 조문국은 185년, 무동이지는 253년에 신라에 각각 병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삼국시대인 514년(신라 지증왕 15년)에는 아시촌 소경(阿尸村 小京)이 설치됐으며 757년(경덕왕16년)에는 문소군으로 이름이 바꼈다.이곳 조문국의 역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벌휴이사금조’기록에 보면 ‘이년 춘정월 친사시조(二年 春正月 親祀始祖) 파진찬 구도를 좌군주로 일길찬 구수혜를 우군주로 해 두 장군에 의해 신라(사로국)에 병합됐다’는 내용이 짧게 기록돼 있다.야사로는 김대문의 화랑세기 필사본을 남기신 남당 박창화 선생의 ‘남당유고 신라사초’에 보면 기원전 124년에 조문국이 형성돼 기원후 245년에 신라에 병합됐다는 내용이 있음에 삼국사기 내용과는 약 60년의 기간의 차가 생긴다고 볼 수 있으나, 가히 조문국 부족국가의 모습은 강성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산재해 있는 고분들의 모습만 보아도 틀림이 없다.고분은 탑리고분군, 대리고분군, 학미고분군에 약 206기의 크고 작은 고분이 산재해 있으며 1960년대 발굴한 탑리 고분에서 금동관, 금동제관식, 목걸이, 장신구, 환구대, 마구류를 포함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고 묘제(墓制)도 경주지역의 고유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유사돌무지덧널무덤’(類似積石木槨墓)을 사용하고 있다.특히 조문국 금동관의 특징은 신라나 백제의 出자모양이나 山자모양이 아닌 독특한 고구려 북방식 모자(조우관) 모양인 꽈베기 모양의 작은 깃털모양의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의성 특유의 생활양식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 빙계계곡한여름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 보낼 최고의 피서지가 있다. 해마다 입춘 무렵부터 찬 기운이 돌아 해가 가장 길어지는 하지 무렵에는 얼음이 얼어 평균 영하4도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입추부터는 다시 얼음이 녹기 시작해 한해 중 해가 가장 짧아지는 동지에는 평균 영상3도의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 신비의 바위굴이다.의성의 빙계계곡이 바로 그곳. 빙계계곡은 경북 팔승지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계곡주위의 경관이 빼어나다. 청송군 보현산에서 내려오는 산세가 화목령을 거치며 만들어 낸 양쪽 협곡도 장관이지만 이 협곡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줄기 또한 찬탄을 자아내게 된다. 수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맑은 시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무수한 바위군이 절경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산세는 이 지역이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활동이 왕성했던 탓이란다. 일찍이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그 경치가 언급됐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으나 기실 빙계계곡이 더 유명세를 치른 것은 계절을 역행하는 자연의 신비 때문. 이름부터 서늘해지는 빙계계곡은 얼음 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삼복더위에 차가운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으로 춘산면 빙계(氷溪)3리에 위치하고 있다. 빙계계곡 체험에서 빼놓으면 안 될 것이 빙계8경. 얼음이 오는 빙혈, 찬바람이 부는 풍혈, 바위전면에 어질 인(仁)자 그림자가 나타난다는 인암, 빙산사지 오층석탑 등 빙계계곡에서 어느 곳 하나 빠지지 않을만한 대표적 볼거리만으로 이뤄져 있다. 빙계계곡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단연코 빙혈이라 부르는 바위굴, 빙혈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자연스레 멈추게 하는 곳이다.  굳이 빙혈이 아니더라도 계곡 옆 길가에 그 입구를 드러낸 풍혈 또한 인기코스가 아닐 수 없다. 수직으로 겹쳐진 바위틈 사이로 한껏 몸을 숙이고 들어가면 5분 정도만 지나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기가 엄습해온다. 이곳 빙계리 곳곳에는 크기가 작은 풍혈들이 여러 군데 있어서 여름이면 마을사람들에게 냉장고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빙계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높이 10m, 둘레가 20m 정도의 유난히도 큰 바위가 나타난다. 빙계동(氷溪洞)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임진왜란 때 이곳에 들른 중국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란 얘기도 전해진다.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경북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깎아 세운 듯한 절벽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시원한 물이 흐르며, 여덟 곳의 이름난 빙계8경이 있다. 빙계8경은 계곡입구에서부터 용추(龍湫)·물레방아(水礁)·바람구멍(風穴)·어진바위(仁巖)·의각(義閣)·석탑(石塔)·얼음구멍(氷穴)·부처막(佛頂)이다. 용추는 빙계계곡 물에 패인 웅덩이이고, 물레방아는 주민들이 계곡물을 이용해 방아를 찧던 것이다. 계곡 큰 바위에 새겨진 빙계동(氷溪洞)이라는 글씨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글씨로 전해진다.▣ 고운사(孤高寺)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고운사(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도교에 모두 통달해 신선이 됐다는 최치원이 여지·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고운(孤雲)을 빌어서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됐다.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것 들이다.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이다.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일제강점기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 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해방이후 쇄락해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했다.하지만 10여년 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낡은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해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이 정도 규모 이상의 고찰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고운사는 민가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자랑하며 일주문에 이르는 솔밭 사이 비포장길은 부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다소곳이 다가서는 불자들의 마음처럼 포근하고 정감 넘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대곡사(大谷寺)다인면 봉정리 비봉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왕사인 지공국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산내에는 본원을 비롯 구암을 지어 불교를 숭상하게 해 호국불교 정신으로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고려시대의 대찰이다. 경내에는 대곡사 대웅전 (보물제1831호), 대곡사 다층석탑 (지방문화재자료 제405호), 대곡사 명부전 (지방문화재자료 제439호), 대곡사 범종각 (지방 유형 문화재 161호)의 지정 문화재가 있다. 다인면 대곡사길 80 (다인 봉정리)▣ 방단형석탑과 누룩바위안평면 석탑리에 있으며 불규칙한 모양의 자연석을 쌓아 만든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탑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탑은 건물터만큼 넓게 낮은 단을 마련해 그 위에 계단모양의 층단을 만들었다. 1, 2단에 걸쳐 네 면에 목탑에서 처럼 감실(龕室)을 파서 불상을 모셔뒀다. 현재 윗부분이 무너져 원래 몇 층이었는지 알 수 없고, 기단과 탑신의 구분도 애매한 독특한 형식의 탑이다.방단형 석탑 인근에 층층으로 싸인 언덕이 있는데 그곳을 이름해 누룩바위라 한다. ‘먼 옛날에 이 누룩바위 아래에는 항상 술이 솟아나와 지나는 나그네들이 즐겨 찾아 목을 적시는 곳이 됐었다. 그런데 이 술은 단 한 잔만 먹도록 돼 있고 그 이상은 절대로 먹지 못하게 엄금돼 있었다. 어떤 불량배가 연거푸 두 잔을 마시고도 또 더 마시려고 하자 그만 술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 뒤로는 영영 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지금도 그 바위덤을 누룩바위라고 칭해 오는데 옛 처럼 술이 나오는 일은 없고 맑은 물만 솟아나고 있다. ▣ 산운마을빛바랜 기와 한 장, 기둥하나하나마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묻어나는 고택과 정자가 즐비하게 늘어 서 있는 산운마을은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이 영천으로부터 옮겨와 살면서 처음 마을을 이룬 이래 걸출한 문인과 학자를 다수 배출했다. 이들 중에는 광해군 때 승지를 지낸 경정 이민환, 현종때 형조판서 운곡 이희발이 태어난 곳도 바로 이 마을이다.영천 이 씨 입향시조인 학동 이광준을 받들어 모신 학록정사(지방유형문화재 제242호)뿐만 아니라 국가중요민속문화재(제237호) 소우당, 운곡당(지방민속문화재제165호), 점우당(지방민속문화재 제166호) 등 고색창연한 고가옥들을 옛 모습 그대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전통의 마을이다.▣ 산수유 마을사곡면 화전2리(숲실마을)일대에는 30-300년생 산수유나무 3만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과도 같은 마을이다. 매년 이른 봄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까지 1개월간 노란꽃물결로, 늦은 가을에는 빨간 열매로 마을을 물들인 경관을 본 사진작가, 그림그리기 동호인, 관광객들 모두가 탄성을 자아내고 한번 가본 사람은 매년 찾아가게 된다.이 마을에 들어가는 입구 30여리 길에서부터 산수유나무가 있어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농업경관이 뛰어나고 3월에는 산수유꽃, 4월 의성 약개나리 꽃(일명 연교), 5월 작약꽃, 9월 메밀꽃, 10월 사곡감, 붉은 산수유 열매, 11월 국화 등이 농경지 들판에 경작되고 있어 농업경관이 탁월하고 냇가와 논밭뚝, 집울타리, 산자락이 시골의 정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심신을 편안하게 해 고향과 같은 마을이다.화전리 산수유 마을은 2006년도 행정자치부가 선정하는 살기 좋은 지역자원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인 국무총리 상을 수상한 마을이다.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지역자원이 풍부한 마을이기도 하며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국가사업재원으로 방문객의 편의를 돕기 위해 생태탐방로, 마을쉼터, 포토존, 전망대 등 시설이 들어서 있다.▣ 산운생태공원금성면 산운마을 내 산운생태공원은 1995년에 폐교된 산운초등학교를 매입해 2001년부터 5년간에 걸쳐 조성해 2006년 6월에 개관을 했다.산운생태공원은 금성면 산운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전시관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2000여 평 의 잔디밭으로 된 운동장이 조성돼 있으며 생태전시관 뒤편에는 연못이나 솟대, 장독과 60여종의 관목류와 초화류가 있어 자연그대로의 자연생태학습장이 2000여평에 걸쳐 조성돼 있다.  생태전시관은 한 동으로 1층과 2층으로 돼 있다.1층에는 의성홍보관과 제1전시관 제2전시관 제3전시관이 있으며 2층에는 산운마을 자료관과 회의실 영상실이 있다.1층의 홍보관에는 의성에 관한 관광정보, 의성의 상징과 의성의 유래 및 연혁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소개돼 있으며, 그리고 의성의 축제라든가 의성의 특산품소개, 그리고 의성의 행정구역에 대한 정보가 전시돼 있다.제1전시관에는 지구의 탄생, 화산활동의 원인, 세계화산과 지진분포도, 지구의 지각변동, 광물암석, 지진활동, 생명의 기원, 인류의 진화단계, 그리고 전시관 뒤편에 있는 금성산과 비봉산의 등산코스에 대해서 설명돼 있다.제 2전시관에는 습지에 대한 설명이 돼있다. 습지란 물이 흐르다 고이는 오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생명체를 키움으로서 완벽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갖춘 하나의 생태계로 많은 생명체에게 서식처를 제공하고 또한 습지의 생명체들은 생태계가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습지식물의 종류로는 가시연, 개구리밥, 광릉골, 물질경이, 보풀, 사마귀풀, 자라풀, 자귀풀, 어리연, 왜개연꽃, 수염가래꽃, 생이가래가 있다. 제3전시관에는 의성이 1억 천오백만년 전에 공룡의 놀이터였던 만큼 공룡의 생성에서부터 공룡의 멸종에 이르기까지의 설명이 잘 돼 있으며, 의성지역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 화석이 사진으로 전시돼 있고, 공룡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입체 음향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2층에는 산운마을의 생성과 유래 마을 연혁 등이 설명돼 있고, 산운마을의 문화재소개 및 산운마을의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돼있으며, 산운마을의 선조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 중, 독, 다래기, 짚신, 맷돌, 다리미, 이남박, 화로 등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낙단보의성·상주·구미 세 지역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융합되고 사람이 어우러지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반영해, 자연에는 이롭고 사람에겐 즐거운 생명이 넘치는 ‘이락지천(利’樂之川)을 컨셉으로 유익한 생태환경과 전통적이며 고풍스러운 경관미를 연출했으며, 치수 단일목적의 하천정비에서 탈피해 하천시설 및 공간을 활용한 친수기능을 증대해 생태공원 조성으로 접근성을 강화했으며, 또한 하천생태계를 보전해 생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환경경관을 위해 정수식물을 식재함으로써 하천 수질 정화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금성산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달리다 경상북도 한복판에서 봉긋 빗어놓은 금성산은 소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가 무성한 숲 속에 신기한 전설이 깃든 영산이다. 그 옛날 시뻘건 용암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현재는 사화산으로, 곳곳에서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들이 세월의 무게를 더해주는 곳이다.깎아지른 절벽인 듯 산세가 가파라 보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600평이 훨씬 넘는 평평한 모래밭이 펼쳐져있다.‘이곳에다 조상 묘를 쓰면 당대 만석꾼이 되지만 인근지역은 3년 동안 비 한방을 안 내린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가뭄이 들어 주민들이 실제 파헤쳐놓은 커다란 웅덩이가 있어 단순히 지어낸 말이 아님을 말해준다.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시대에 만들었다는 길이2,730m, 높이4m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길게 나 있고 그 길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등을 만날 수 있다. 의상조사가 창건한 수정사과 산운마을을 함께 둘러보면 더욱 좋다.▣ 의성 공룡발자국 화석천연기념물 373호로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 석은 의성군 관내 지방도로 확장공사 중 산 허리 부분의 흙을 깎아내면서 발견됐다.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때의 것으로 약 1억1500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화석은 4종류의 공룡발자국 316개가 확인됐으며, 발굽울트 라룡, 발톱고성룡, 발목코끼리룡 등 3종류의 초식공룡발자국과 육식공룡인 한국큰룡발자 국이 발견됐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발의 크기, 보폭, 걷는 방향 등을 알 수 있어 당시 공룡의 모습과 생활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 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애기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 금봉자연휴양림옥산면 금봉리 금봉지 인근에 자리잡은 금봉자연휴양림은 봄이면 사과꽃이 만발인 꽃길이 쭉 이어져 있고 가을이면 형형색색으로 갈아입은 단풍길을 따라 아늑한 휴식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금봉자연휴양림이다. 때 묻지 않는 자연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탁트인 아름다운 풍광이 온몸을 짜릿하게 흥분시키는 이곳은 온 가족이 함께 단란한 한 때를 보내면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 제격이다. 해발834m 아름다운 금봉산 자락 380ha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휴양림에는 9-11평짜리 방 12개가 있는 2층 목조건물 산림휴양관이 있고 야외무대, 캠프파이어장, 정자 등을 고루 갖춰놓아 불편함이 전혀 없다. 특히 5km에 이르는 등산로 곳곳에는 원목으로 만든 경북 향토 시인들의 시화작품 60점이 줄지어 세워져 있어 싱그런 공기와 나무 향을 코끝으로 음미하면서 가슴을 흠뻑 적셔오는 시향(詩香)에 한껏 빠져보는 묘미도 만끽할 수 있다. 경북에서 강원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임도 중 일부는 대한민국 아름다운 임도 베스트 10에 들기도 했다. 휴양림 진입전 금봉지는 둑높이기사업으로 인해 총 463만t과 730만t 규모의 수량을 가진 저수지로 탈 바꿈했으며, 둑높이기 저수지의 주변에 수변공원과 전망 쉼터 등 멋진 경관을 조성하고, 취수탑의 전망대를 동심원과 사과 등으로 형상화해 타저수지와의 차별화를 통해 관광객이 찾아드는 명품 저수지로 조성됐다.▣ 의성 생송리 마애보살좌상이 보살상은 낙동강 살리기사업 제32공구 현장의 낙단보 통합관리센터부지 조성공사 중에 발견된, 전체높이 213㎝, 상(像) 높이 164㎝ 크기의 마애보살좌상이다. 좌우로 약간 벌어진 삼산형(三山形)의 보관을 쓰고 한 손에는 연꽃가지를 쥐고 있다. 평면적으로 선각(線刻)된 불신 위의 착의상태는 알 수 없으나, 등 뒤쪽에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이 얕게 새겨져 있고, 대좌도 이중선으로 새겨진 복엽의 연화대좌이다. 이 보살상의 제작기법은 신체를 선각에 가깝게 평면적으로 새긴 반면에 얼굴부분은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저부조(低浮彫)했다. 이와 같은 조각기법은 고려 전기에 널리 일반화됐던 마애불 제작기법으로 판단된다. 의성 생송리 마애보살좌상은 상호가 원만하고 자비로운 보살의 이미지가 잘 표현된 고려 전기의 마애 상으로서 낙동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수운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상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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