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가을 중의 가을인 명절이다. 달의 명절로도 일컬어지는 추석에는 풍요를 기리는 각종 세시풍속이 행해진다.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차례와 같이 엄숙한 세시풍속이 있는가 하면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는 세시놀이 역시 풍성하게 행해진다. 추석은 애초 농공 감사일(農功感謝日)로서 이날 명절식으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올려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이 중요한 행사다. 추석 전에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해 여름 동안 묘소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준다.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장만해 조상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차례는 대체로 4대 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부터의 관행이다.▣ 누구보다 조상께 감사해 했던 ‘추석’추석의 원래 명칭은 가배·가위·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했다.이날은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을 거둘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또 1년 중 가장 큰 만월 날을 맞이해 풍년을 꿈꾸는 우리 조상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던 날이기도 했다.특히 이날 계절은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같아라’란 속담도 생겨나게 됐다. 우리 선조 때부터 이어 내려온 추석, 이 날이 명절로 된 것은 삼국시대 초기였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눠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했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 (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오랜 전통이 있는 추석명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추석이 되면 조석으로 기후가 쌀쌀해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다.추석에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한다.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짓는 가정에서는 머슴들까지도 추석 때에는 새로 옷을 한 벌씩 해준다.추석날 아침 일찍 일어나 첫 번째 일은 차례를 지내는 일이다. 주부에 의해서 수일 전부터 미리 준비한 제물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낸다. 이때에 설날과는 달리 흰 떡국 대신 햅쌀로 밥을 짓고 햅쌀로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다. 가을 수확을 하면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천신(薦新)한 다음에 사람이 먹는데 추석 차례가 천신을 겸하게 되는 수도 있다.차례가 끝나면 차례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飮福)을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추석에 앞서 낫을 갈아 가지고 산소에 가서 풀을 깎는 벌초를 한다.여름동안 자란 풀이 무성하고 시들어 산불이라도 나면 무덤이 타게 되므로 미리 풀을 베어주는 것이다. 어쩌다 추석이 되어도 벌초를 하지 않은 무덤은 자손이 없어 임자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은 있어도 불효해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여서 남의 웃음거리가 된다.추석은 공휴일로 제정돼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교통혼잡을 이루고 도시의 직장들은 쉬게 된다. 이처럼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기 위해서다. 추석명절에 차례와 성묘를 못 하는 것을 수치로 알고, 자손이 된 도리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의 의식구조다.▣ 풍족한 마음으로 즐겼던 ‘추석놀이’추석 무렵은 좋은 계절이고 풍요를 자랑하는 때이기에 마음이 유쾌하고 한가해서 여러 놀이를 한다. 사람들이 모여 농악을 치고 노래와 춤이 어울리게 된다.농군들이 모여 그 해에 마을에서 농사를 잘 지은 집이나 부잣집을 찾아가면 술과 음식으로 일행을 대접한다. 먹을 것이 풍족하니 인심도 좋아서 기꺼이 대접을 한다. 이렇게 서너 집을 다니고 나면 하루가 간다.농군들이 마을을 돌면서 놀 때에 소놀이·거북놀이를 하게 된다. 소놀이는 두 사람이 멍석을 쓰고 앞사람은 방망이를 두개 들어 뿔로 삼고, 뒷사람은 새끼줄을 늘어뜨려 꼬리를 삼아 농악대를 앞세우고 이집, 저집 찾아다닌다. 일행을 맞이하는 집에서는 많은 음식을 차려 대접한다. 마당에서 술상을 벌이고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면서 한때를 즐긴다.이때에 소도 춤추는 시늉을 하면 사람들은 웃고 놀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소놀이를 할 때 마을에서 일을 잘하는 머슴을 뽑아 농우에 태워서 마을을 누비고 다니는 일도 있다. 여름 동안 수고가 많았으므로 위로하는 것이고 영광을 안겨주는 일이 된다. 상머슴으로 뽑히면 일을 잘했기 때문에 다음해에 많은 새경을 받게 된다.거북놀이는 두 사람이 둥근 멍석을 쓰고 앉아 머리와 꼬리를 만들어 거북이시늉을 하고 느린 걸음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큰 집을 찾아가 “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음식을 청하고 들어가면 주인은 음식을 내어 일행을 대접한다. 놀이는 소놀이와 비슷하다.한 집에서 잘 먹고 난 다음 다른 집을 찾아간다. 이때에 얻은 음식을 가난해서 추석음식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일도 있어 협동과 공생(共生)의 의식을 보이기도 한다. 소놀이와 거북놀이는 충청도·경기도 등에 전승되고 있다.또 마을사람들은 모여 줄다리기도 했다. 한 마을에서 편을 가르거나 몇 개 마을이 편을 짜서 하거나 또는 남녀로 편을 갈라서 하는 일도 있다. 줄의 크기나 편의 규모는 일정하지 않고 많을 때에는 수천 명에서 작을 때에는 수십 명이 모여서 하는 수가 있으나 집단을 이루며, 줄의 큰 것은 줄 위에 올라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큰 경우도 있다.큰 줄을 만들려면 볏짚이 많이 필요하므로 각 집에서 짚단을 제공하고 수천 단을 들여서 만드는 일도 있다. 만든 줄을 줄다리기 장소로 옮길 때에 너무 커서 들고 가지 못하면 근래에는 트럭에 싣고 가거나 끌고 가는 일도 있다. 줄다리기의 승부는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농경의례의 하나로 여겨, 암줄이 이기면 풍년이 드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줄다리기는 상원에 주로 하지만, 추석 때와 단옷날에 하는 곳도 있다.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씨름판을 벌이는데, 어린이들은 아기씨름을 하고 장정들은 어른씨름을 한다. 잔디밭이나 백사장에서 구경꾼에 둘러싸여 힘과 슬기를 겨루게 된다. 씨름에서 마지막 승리한 사람에게는 장사라 부르고 상으로 광목, 쌀 한 가마, 또는 송아지를 준다.궁사(弓士)들은 활쏘기도 한다. 사정(射亭)에 모여 일정한 거리에 과녁을 만들어놓고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는 경기이다. 활쏘기는 상무정신을 기르게 하고 심신을 단련하게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마음을 통일시키지 못하면 과녁을 맞출 수가 없기에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쏴야 한다. 여러 궁사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쏘아 과녁에 맞으면 ‘지화자’ 노래를 부르면서 격려하고 축하를 해준다.▣ 풍족한 마음을 전했던 ‘추석’이처럼 추석은 1년 중 가장 큰 만월을 맞이하는 달의 명절로서, 농경민족으로서 수확의 계절을 맞이해 풍년을 축하·감사하며 조상에게 천신하고 성묘해 추원보본을 했고, 명절의 기쁨에 넘쳐 여러 가지 놀이가 있어 사람의 마음을 더욱 즐겁게 했으며, 신을 섬기고 풍·흉을 점복(占卜 : 점침)했다. 풍부한 음식을 서로 교환해서 후한 인심을 보였고, 농한기를 이용해서 놀이하고 근친(近親:친정에 가서 아버지를 뵘)하는 즐거움이 있었다.추석은 농경생활에서 추수감사와 조상에 보은하며 먹을 것이 넉넉함에 만족해 온갖 놀이로 즐기는 명절로 전승됐으나 공업생산시대에 들어와 그 절실함이 감소됐다. 그러나 아직도 추석 귀성은 여전하며, 풍요에 감사하고 조상에 추원보본하는 추석의 원래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 추석선물의 변천사추석에 달걀이나 밀가루를 선물로 준다면? 지금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1950년대엔 최고의 명절 선물이었다. 시대별 명절 선물 인기 아이템은 당시 사회의 발전 모습과 우리의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사람들은 추석 때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을까? 그 변천사를 살펴보자.△1950년대: 달걀, 찹쌀, 고기 등 수확한 농축산물이 추석 선물6·25전쟁 후의 추석 선물은 식생활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품화된 추석 선물은 존재하지 않았고, 직접 수확한 달걀·찹쌀·고추·돼지고기 등과 같은 농축산물을 수확해 주고받았다.△1960년대: 추석 선물의 지존은 설탕과 세탁비누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라면 50 개입 한 상자, 맥주 한 상자, 설탕 6kg, 세탁비누 30개 세트 등이 선물로 등장했다. 이때부터 추석 선물이 상품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설탕과 세탁비누, 조미료 등은 고급 선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설탕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상품은 ‘그래-뉴 설탕’으로 6kg에 780원, 30kg에 3900원에 판매됐다. 1963년에 라면 한 봉지에 10원, 자장면 한 그릇이 평균 25원이었던 것에 비교해본다면 설탕이 얼마나 고가의 선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1970년대: 산업화 영향으로 실용적인 선물세트가 인기경제 산업화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추석 선물에도 큰 변화가 왔다. 식용유, 치약, 양말과 같은 실용적인 선물세트가 등장했고, 여성용 화장품과 스타킹도 첫 등장과 동시에 고급 선물로 자리매김했다. 여성용 화장품 세트는 3300-5000원에, 반달표 스타킹세트(6개입)는 900-1800원에 판매됐다. 당시 희귀했던 금성 라디오가 7700원에 판매된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고가의 선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 동서식품의 맥스웰 커피세트는 당시 백화점 추석 선물 매출로는 설탕과 조미료 세트에 이어 3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과자선물세트도 추석 선물의 필수 품목으로 1979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1980년대: 화장품, 정육, 과일 등 전 품목에서 ‘패키지화 경쟁’추석 선물도 드디어 단순한 포장에서 고급 패키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978년 비누 선물세트의 고급 패키지를 시작으로 화장품, 정육, 과일 등 전 품목에서 ‘패키지화 경쟁’이 벌어졌다. 더불어 선물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졌다. 그전에는 선물 아이템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넥타이, 지갑·벨트세트 등 신변잡화용품이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다. 이전부터 최고급 선물로 인정받아오던 갈비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가장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선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1990년대: 추석 선물의 양극화 현상1990년대의 가장 대중적인 추석 선물은 ‘상품권’이었다. 1994년 4월부터 상품권이 본격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했고, 간편하고 편리한 상품권의 장점이 주목받으면서 1990년대 후반엔 가장 대중적인 선물이 됐다.또 대형할인점이 생기면서 실속 있는 저렴한 선물세트가 생긴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이런 저가 선물세트와 함께 100만원이 넘는 양주나 영광굴비와 같은 호화 선물도 등장해 판매됐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라고 볼 수 있다.△2000년대: 웰빙 식품의 열풍2000년대 들어서면서 가장 큰 특징으로 나타난 것은 ‘웰빙 식품’의 인기 상승이다.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찾으면서 건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각종 웰빙 제품이 사랑받게 됐다. 와인, 올리브 등은 물론 치즈나 트뤼플 등 세계적인 진미 상품이 명절 선물로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행복한 추석, 그러나 상당수의 의견 “고향가기 싫어”가족과 친지들을 만난다는 기분에 설레는 마음부터 전했던 ‘추석’그러나 그랬던 모습들은 이제 과거의 전유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바쁜 생활 속에 시간을 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고향을 찾지 못해 자신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전화 한 통화로 대신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가 하면 취업 등을 하지 못해 가족과 친지들에게 잔소리가 듣기 싫어 고향을 찾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모처럼 오랜 기간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고향보다 자신의 여가시간을 갖게 되는 것도 지금 시대에 공공연히 발생하는 모습 중 하나다.추석이 다가오는 24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봤다.△1년 반 동안 취업준비생 신분이었다가 올 상반기 대기업에 취직했다.작년 추석만 해도 친척들 얼굴 보기가 부담스러웠는데 올해는 당당하게 친척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추석에 가장 기다려지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추석 상여금이다. 170만원을 받는데 엄마에게 일부 드리고 나머지 돈으론 제가 멜 좋은 가방 하나 사고 싶다. 학생 때 쓰던 걸 그대로 들고 다니고 있다.(26·여·회사원) △이번 추석엔 세탁소 문을 잠시 닫고 아이들과 단양으로 여행간다. 큰 형님 집에 내려가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형님 집이 부산인데 사실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KTX 표는 어찌나 금방 매진되던지. 매번 결국 차로 내려갔지만 그때마다 12시간씩 운전하니 중간에 화장실도 못 가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10년 동안 추석 때면 치르던 그 전쟁통을 올해는 피할 수 있다.(57·세탁소 운영)△3년간 행시 재경직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2차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살고 있는데 추석 당일엔 본가에서 하룻밤 자고 부모님과 함께 아침을 먹을 것 같다. 고시촌 가게들도 명절에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 이번 추석은 지난 설날보다 조금 여유가 있다. 지난 설에는 1차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어 집에도 못 갔는데 이번 명절은 2차 시험 끝나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추석이 썩 반갑진 않다. 친척들이 “올해는 될 것 같니”라고 물어보기 때문이다. 제게 추석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단 하루 쉴 수 있는 날일뿐이다. 기대되진 않는다.(25·여·고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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