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단체상봉에 나선 남북 이산가족들은 짧은 만남에 애달픈 눈물을 흘리며 기약 없는 이별을 준비했다. 하늘도 가족들의 슬픔을 안다는 듯, 이날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북측에서 온 형 리한식(87)씨는 남한에 사는 막내동생 이종인(55)씨에게 경북 예천 `옛 초가집`의 모습을 직접 그려줬다. 종인씨는 "2시간이 참 아까운 시간이지만 마지막 선물로 받아 가려고 부탁했어요. 저는 그 옛날 집을 모르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전날 저녁 환영만찬에서 쓰러져 진료를 받았던 북측 리흥종(88)씨의 하나뿐인 딸 이정숙(68)씨는 "이번에 돌아가면 아버지 목소리 기억 못 하잖아. 아빠 노래하실 수 있어요?"라며 아버지에게 `노래 선물`을 부탁했다. 흥종씨는 그 자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노래를 딸에게 선사했다. 흥종씨는 말할 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딸의 손을 꼭 잡고 노래 `백마강`을 불렀다. `백마강`은 충남 예산이 고향인 홍종씨가 젊은 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정숙씨는 그 모습을 평생 잊지 않겠다는 듯,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아버지를 바라보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흥종씨가 평소 좋아했다던 `애수의 소야곡`까지 연달아 구슬프게 부르자 주변 가족들의 두 눈은 금세 벌게졌다. `애수의 소야곡`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준 노래이기도 하다.정숙씨는 아버지의 `노래 선물`을 받고 "아빠 어떻게 가사도 다 기억해. 아빠 노래 잘 하시네"라며 "엄마가 나 3~4살때 나를 팔에 놓고 노래를 불렀는데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어"라며 노래 한 곡을 아버지에게 불러 보였다. 일본 가요인 듯 했다.이에 흥종씨는 "그 노래를 알아?"라고 되물었고, 정숙씨는 "엄마가 불러줬어. 엄마는 노래 할 줄 몰랐는데 아빠 생각나면 나를 안고서 이 노래를 했다고. 내가 아빠한테 지금 노래 불러줄까. 여기 가만히 귀에다 대고 해드릴게 지금"이라고 했다.흥종씨는 "북에서는 그 노래하면 안 돼"라고 했지만, 정숙씨는 "아빠한테만 한다구요, 내가 지금"이라 했다. 홍종씨가 거듭 "안 돼, 안 돼"라고 하자 비로소 정숙씨는 "알았어. 아버지가 안 된다면, 다 안 돼"라고 고집을 꺾었다.이들 외에도 북측 한순녀(82)씨의 외조카인 남측 권희조(76)씨는 "하루 저녁 같이 자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요"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고, 북축 오빠 원규상(82)씨를 만난 남측 여동생 원화자(74)씨는 "만나서 너무 기뻤는데 벌써 끝날 때가 돼서 너무 아쉽다"며 오빠의 손을 꼭 잡았다.특히 규상씨의 남측 가족들은 규상씨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외교학과를 나왔고 52년 동안 당 간부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규상씨는 가족들과 만나 "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며 김정은도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남한도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남북 당국은 이날 단체상봉에서 가족들을 위해 다과와 음료 등을 함께 준비했다. 특히 북측은 새봄강정, 우유백합과자, 랭천사이다, 캔커피, 단묵(젤리), 금강산샘물 등을 내놓았다.이날 오후 6시30분께 단체상봉이 끝나면 이날 일정은 모두 마무리된다. 가족들은 각각 저녁 식사를 한 뒤 숙소에서 `이별`을 준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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