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불려온 ‘아리랑’은 구수한 노랫가락에 어우러진 대한민국 대표 민요 중 하나로 손꼽힌다.아리랑이란 명칭은 ‘아리랑······’ 또는 ‘아라리······’ 및 이들의 변이를 여음(후렴 또는 앞소리)으로 지니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아리랑은 전국에서 고루 분포돼 있을 뿐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퍼져 있어서 이른바 ‘독립군아리랑’을 비롯해 ‘연변아리랑’ 등의 이름이 쓰이고 있을 정도며, 멀리 소련의 카자크스팅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아리랑도 전해지고 있다.하지만 이런 아리랑의 본래 탄생지가 경산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아리랑을 토대로 하면 강원도 일대에 분포된 ‘정선아리랑’, 호남지역의 ‘진도아리랑’ 그리고 경남일원의 ‘밀양아리랑’이 삼대아리랑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영남민요연구회 경산지회(회장 배경숙)는 아리랑의 본향(本鄕)인 경산에서 경산아리랑만의 멋을 전하고 아리랑의 진정한 유래를 바로 잡기 위해 오는 25일 경산시민회관서 ‘제1회 경산아리랑제’를 개최, 아리랑의 원산지인 경산만의 구수한 노랫가락을 살려 관객들에게 전할 계획이다.배경숙 회장은 “이번 음악회를 개최하기 위해 10여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연구와 소규모 활동으로 전전해 왔다”며 “오랫동안에 걸쳐 준비한 음악회인 만큼 관객들에게 아리랑의 참 멋을 전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 아리랑의 고향 ‘경산’경산은 원효대사의 일심사상, 화쟁사상, 무애사상과 설총선생의 도덕정치, 일연선사의 삼국유사가 탄생한 고장이다. 특히 한국사의 중요사료로 손꼽히는 일연선사의 ‘삼국유사’는 지역민의 민담과, 신화와 설화, 향가 등이 수록돼 있어 한국사의 중요사료로 손꼽히는데 ‘아리랑’의 유래도 확인할 수 있다.삼국유사에 따르면 오늘날에 전하는 향가 14수는 우리 민초들 삶의 노래의 원형이었으며, 그것은 대를 이어 민족의 삶 속에 스며들어 부박진 삶과 함께 해 온 민요로 발전해왔고 그것은 아리랑으로 이어져 내려왔다.아리랑의 위상은 2011년 중국이 조선족아리랑을 자국 국가급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이듬해인 2012년 한국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이후 2년 후인 지난해에는 북한이 다시 아리랑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부각됐다. 여기에 지난달 24일에는 문화재청이 아리랑을 대한민국 국가주요무형문화제 129호로 지정해 모두 4관을 획득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문화유산으로 등극했다.이 사실로도 일연의 ‘아리랑’은 ‘민족의 노래’임은 물론 ‘세계의 노래’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이런 사실에서 아리랑의 위상과 같은 노래는 전 세계 유일하다는 것과 유네스코와 문화재청이 아리랑을 등재하고 지정할 때 특정아리랑이 아닌 포괄적 명칭으로 모든 아리랑을 포함시켰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영남민요연구회 경산지회 “아리랑을 알린다”영남민요연구회 경산지회는 2003년 처음 공식화된 단체로 이를 이끌고 있는 영남아리랑을 대구의 명물로 정립시킨 배경숙 회장은 영남민요연구회의 소박한 영남전래민요 소리꾼이었다.제1대 김영순 회장과 회원들을 가르치며 처음 영남민요연구회에 발을 들이게 된 배 회장은 지난해 제2대 회장이 되기까지 끝없는 자기 성찰과 공부, 연구 등을 통해 영남민요연구회 경산지회를 굳건히 다지는데 큰 몫을 했다.배 회장은 10여년전 영남전래민요의 연구와 무대화라는 창조적 계승의 소명을 깨닫고 이를 위해 힘겨운 역경을 이겨내며 연구와 활동에 매진했다.우선 배 회장은 30여명의 회원들과 2005년 10월 19일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란 타이틀로 제1회 공연을 했다. 이후 대구 주위로부터 고성, 영덕, 문경, 봉화, 예천, 상주, 구미, 밀양, 안동, 의성, 군위, 다사 등 시·군을 답사해 물레소리, 나무하러가는 소리, 지게목발소리, 화전노래, 꽃노래, 댕기노래, 춤치타령, 나물노래, 어부사 등을 발굴해 무대화했다.영남민요의 대중화를 위한 무대화 작업은 발굴된 가사에 멜로디를 만들어 현재에 살려내는 작창작업이었다.영남민요회가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는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들이다.또한 가사 속에 담긴 상황을 무대에서 재현하기 위해 물레다듬이, 지게, 화전 솥, 디딜방아, 맷돌, 소쿠리 같은 생활도구를 직접 제작해 무대에 올리는 노력을 더해 사라져가는 영남의 민속 문화에 생명을 물어넣는 작업을 했다.이후 2006년 2회 발표회 때 ‘아리랑 종합 전승실태 조사보고서(문화재청)’에 기준해, 멜로디가 정확히 전승되지 않는 곡에 대해서는 배 회장이 직접 작창을 해 영남지역 아리랑의 전 바탕을 최초로 무대화 했다. 이후 서양음악과 국악을 접목시켰으며, 매년 정기공연으로 정례화 했다.이런 과정에서 배 회장은 영남민요의 무대화, 영남아리랑의 재발견 그리고 영남전래민요의 최초 민요전공자이며 초대국립중앙도서관장인 파공산인 이재욱씨를 아리랑의 연구 중 접하게 됐고 그의 영남민요를 향한 업적을 밝히는데 몰두해 그가 남긴 ‘영남전래민요집’에 수록된 민요자료들을 무대화해 그의 업적을 기렸다. 예술인으로서의 무대 작업, 이재욱 연구와 영남민요 연구가로서의 학업을 힘겹게 병행했다.이후 2008년 영남대학교에서 ‘이재욱과 영남전래민요집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저서와 논문, 신문 연재 등을 통해 영남이리랑을 재발견했다. 또 팔공산인 이재욱을 대구의 근대문화인물로 부각시켰고, 그의 영남전래민요집 영인본 보급 등의 활동도 본격화 했다.이어 경산지회 구미지회 설립과 영남지역의 창작 아리랑 발표 등 아리랑의 현대적 계승 실천을 인정받아 2012 ‘아리랑’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아리랑을 향유하는 주요 단체로 선정됐다. 그리고 그동안 연구한 지역아리랑의 대중화와 지역민들을 위한 찾아가는 문화마당 등 작은 음악회와 무료공연 등으로 그동안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에 힘쓰고 있다.영남민요연구회 경산지회가 이렇게까지 크기까지는 어려웠던 점도 많았다. 문화재청, 대구시 등의 지원이 그리 많지 않았던 초기시절에는 진정한 아리랑을 관객들에게 전하기 위해 소품 등을 자신의 사비로 사야하는 등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회원들은 자신이 속한 단체가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 넉넉지 않은 사비를 내놓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배경숙 회장은 “이 단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회원들이 자신의 일처럼 이곳에 매달려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좋으신 분들이 나름대로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 회장은 이어 “초창기 황무지와 같았던 이곳을 이렇게까지 닦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제1대 회장이신 김영순 회장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며 “건강 상 회장직을 내려놓으셨지만 우리를 위해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아 언제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 ‘제1회 경산아리랑제’… 경산을 넘어 대구·경북을 달군다오는 25일 경산시 계양동 경산시민회관서 열리는 ‘제1회 경산아리랑제’는 그야말로 아리랑의 총집합체를 느낄 수 있는 축제다. 구수한 옛 가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대구·경북 일대의 판소리 名人들이 모두 모이는 ‘제1회 경산아리랑제’는 제Ⅰ장 향가의 향기, 노래의 향기, 제Ⅱ장 향가의 얼, 민요, 제Ⅲ장 아리랑과 영남민요로 구성돼 있다.제Ⅰ장 향가의 향기, 노래의 향기는 찬기파랑가, 서동요로 진행된다. 제Ⅱ장 향가의 얼, 민요는 방아·맷돌소리, 지점소리, 물레소리, 모심기노래, 화전놀이, 나무하러가는 소리·지게목발소리, 밭메는 소리, 사물놀이와 남사당놀이, 어부사 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인 제Ⅲ장 아리랑과 영남민요에선 밀양아리랑, 상여소리, 경산아리랑, 모듬북 연주, 다함께 영화아리랑 등으로 경산시민회관을 달군다.작품해설에 이어 진행될 이번 공연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도 높다.이천수 경산시의회 의장, 곽태천 영남대 명예교수, 김기현 경북대 명예교수 등의 축사에 이어 지역 판소리계에서도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아 전국 판소리계에서도 이번 축제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음이 확인된다.배경숙 회장은 “영남민요연구회 경산지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한 공연이니만큼 모든 관객들이 만족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경산아리랑의 우수성을 대구·경북을 넘어 전국 곳곳에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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