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로 무너진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복원됐다. 무모한 도전에 나선 남자의 순수한 열정이 큰 감동을 자아내는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를 통해서다.1974년 8월. 한 남자가 412m 높이에 42m 간격의 두 빌딩 사이에 줄 하나를 연결했다. 이후 그 위를 한 번이 아닌 무려 여덟 번씩 오갔다. 목숨(?)을 건 도전에 나선 주인공은 오로지 그 빌딩 사이를 걷고 싶어 프랑스 파리에서 날아온 무명의 아티스트 필립 프티(66)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고공줄타기 예술가다. 쌍둥이 빌딩을 건넌 후 영화 제의부터 책 출간, 광고용 줄타기까지 다양한 제안을 받았으나 서커스단의 청만 빼고 모두 거절했단다. 이후에도 파리 에펠탑과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고층건물에 줄을 매단 기인이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이 실존인물이 쌍둥이빌딩 걷기에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그린 영화다. 보조개가 예쁜 할리우드의 개성파 배우로 국내에서는 ‘인셉션’(2010)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로 친숙한 조셉 고든 레빗이 프랑스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필립으로 분해 자유의 여신상에서 극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랑스 파리 태생의 이 남자는 왜 줄타기에 매료된 걸까? 어떤 계기로 쌍둥이 빌딩에 오를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불법인 빌딩곡예를 실행에 옮겼을까? 영화는 이러한 의문을 하나씩 풀어주며 필립이 곡예를 한 40년 전의 그 극적인 순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것도 3D영상으로 만들어 고소공포증 환자라면 겁이 날정도로 아찔하고 생생하게. 1960년대 파리의 거리 풍경이 멋스럽지만 이 남자를 소개하는 전반부는 딱히 극적인 사건이나 큰 갈등이 없다. 필립 인생의 중요한 사건과 사람의 이야기가 차근차근 소개된다. 드라마 위주라 이때는 3D안경이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영화는 이 남자의 매력을 서서히 일깨워준다.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한 순간 망설임도 없이 전진하는 사람.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의 전진은 너무나 순수하다. 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이 기인에게 매료됐는지 알 것 같다.필립과 그의 미친 짓에 합류한 ‘공범’들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자신들의 위험천만한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는 후반부는 좀 더 가슴을 뛰게 한다. 결행일을 앞두고 발바닥을 다친다든지, 건물 경비원 몰래 줄타기 장비를 옮긴다든지 온갖 자극으로 가득한 요즘 영화로 치면 참 별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극에 몰입된 상태에서는 이런 서스펜스가 없다. 참으로 건전한 서스펜스다. 우여곡절 끝에 필립이 그 아슬아슬한 줄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는 그저 장관이다. 가슴 속에서도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외줄의 발 아래에 장대하게 펼쳐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실제로 그 줄 위에서 그가 느꼈을 엄청난 감동이 알듯말듯 전해진다. 그야말로 미친 짓인데 남자의 열정은 그저 숨을 쉬듯 자연스럽다. 남자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뜨거운 갈망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 혹은 종교나 다름없는 예술이다. 필립은 “첫발을 내딛는 순간 마지막 발을 디딜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건 일종의 믿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인생을 이끈 키워드로는 `열정과 고집, 직관, 믿음, 즉흥성, 영감`을 꼽았다.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고 깊은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않을까. “아름답지만 위험하다”면서도 필립의 꿈을 끝까지 응원하는 연인 애니(샬롯 르)는 말한다. “당신이 건물에 영혼을 불어넣었어.” 당시만 해도 뉴요커들은 이 고층건물을 “대형 캐비닛 두 개를 세워놓은 것 같다”며 싫어한 모양이다. 하지만 필립의 도전 덕분에 쌍둥이 빌딩은 달리 인식됐다. 2001년 이후 쌍둥이 빌딩은 테러와 불가분의 관계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면 더 이상 비극적 건물로만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덧붙이면 꼭 3D로 보길 권한다. 123분, 12세관람가,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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