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내린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려는 15세 소년 다무라 카프카, 고양이와 대화가 가능한 60대 초반의 지능장애 노인 나카타. 한 무대에서 두 사람의 평행우주가 만나는 순간,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월드`는 니나가와 유키오의 특유의 서정적인 연극 미학으로 압축됐다. 한국에도 마니아층을 구축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2002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옮긴 일본 연극 `해변의 카프카`가 24일 LG아트센터에서 내한공연으로 첫 선을 보였다. 2차원의 지면 속 상상의 공간뿐 아니라 3차원의 무대 속 물리적인 공간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정수인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판타지를 잃지 않는 묘를 발휘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선 카프카의 방황기인데, 일종의 성장담이자 모험담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 인물들이 으레 그렇듯 패턴화된 일상을 살아가던 카프카도 돌연 이상하고 기묘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런데 환상성은 문자, 단어, 문맥 틈에서 추정 가능한 상상으로 극대화된다. 물리적으로 구현이 될 때 눈을 현혹하는 특수효과가 아닌 이상 감흥의 농도는 묽어질 수밖에 없다. 니나가와 유키오는 단순한 방법으로 환상성을 박제한다. 상징을 상징으로 대체하는 것인데, 26개의 거대한 투명 유리 상자 세트(실제로는 아크릴)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구현해낸다. 저택, 공원, 고속도로, 도서관, 깊은 숲 속 신비로운 장소 등이 유리 상자 세트 안에 갇혀 있다. 인물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연기를 한다.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인상을 전한다. 나카타가 작품 속에서 `입구의 돌`을 열 듯. 유리상자들은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오가는 여러 캐릭터들의 동선을 효과적으로 압축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복수의 유리 상자가 무대 위에 동시에 놓여 있는 건, 평행 우주를 자연스레 상징하는 것이니 이보다 효율적일 수는 없다. 휘황한 무대를 통해 극 시작 3분 안에 관객을 연극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니나가와 유키오의 신념은, 이 유리 상자들이 들어오기 전 `해변의 카프카` 초반부터 실현된다. 검은 옷을 입고, 재빠른 닌자차럼 이 유리상자들을 밀고 당긴 스태프들의 수고가 큰 역을 했다. `해변의 카프카`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소년의 성장담이다.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를 좋아하는 소년이 주인공인만큼 그 성장 과정은 현학적이다. 400쪽 안팎의 2권짜리 책을 3시간(인터미션 20분)으로 압축, 서사를 덜어낸만큼 무대의 현학성은 더 짙어졌다. 카프카의 또 다른 자아인 `까마귀`가 등장, 관조적인 대사를 읊는 부분도 그러하다. 체코어로 `카프카`는 까마귀를 가리킨다. 책을 읽지 않고 자막을 봐야만 하는 독자라면,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형이상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카프카 역의 후루하타 니노, 아름다운 10대 소녀와 40대의 `사에키 고무라 기념 도서관` 관장을 오간 미야자와 리에, 고무라 기념 도서관의 사서로 나오히토가 카프카를 돕는 오시마 역의 후지키 나오히토는 진실성으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해변의 카프카`는 이처럼 원작의 환상성, 무대 미학의 서정성, 배우들의 물리성 등 평행우주의 다양한 요소를 씨줄과 날줄로 느긋하게 엮었다. 연극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성공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우아하게 증명한다. 일본 사이타마에서 2012년 초연했다. 이번 공연은 니나가와 연출가의 팔순을 기념하는 월드 투어의 하나다. 뉴욕 링컨센터, 런던 바비칸센터, 일본 사이타마예술극장, 싱가포르 에스플라네이드 등 세계적인 극장에서 현지 관객들과 만났고 LG아트센터에서 피날레를 장식한다. 28일 마지막 공연이 100회가 된다. 4만-8만원.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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