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주의자’ 거산(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26일 마지막 등원을 끝내고 영원히 국회를 떠났다. 이날 영결식장이 마련된 국회에는 오후 1시부터 목도리와 두터운 옷으로 중무장한 추모객들이 모여들며 추모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보온용 담요와 핫팩을 든 추모객들은 연신 추위에 떨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YS를 추모했다. 손명숙 여사는 고령과 정신적 충격으로 몸이 안 좋아 불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었지만 오후 1시57분 휠체어를 타고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YS의 장남인 은철씨와 김현철 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장이 손 여사의 뒤를 따랐다.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이명박 대통령 내외도 차가운 날씨 속에서 고인을 애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로와 심한 감기로 영결식장에 오지 못했다. 주한 외국대사를 포함한 해외 조문 사절단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핫팩을 들고 영결식을 지켜봤다.손녀의 손을 잡고 온 할아버지, 엄마와 함께 온 초등학생 등 일반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국회를 찾은 추모객은 경찰 추산 7000여명을 기록했다. 사전에 등록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영결식장을 찾아온 추모객 때문에 한 때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빈소 떠나는 운구행렬 ‘눈물 바다’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인날인 26일 오후 1시10분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빈소를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추모객 200여명이 자리했다. 잠시 뒤 환한 얼굴을 한 김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끌어 안은 장손 성민(25) 씨가 등장하자 유족들은 또 한 번 오열했다. 그 뒤로는 차남 현철 씨 등 가족들과 친인척, 지인 50여명이 뒤따랐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상도동 사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이 누워 있는 관(棺)이 리무진 차량에 실리고, 트렁크 문이 닫히자 운구 행렬이 시작됐다. 1시25분께 김 전 대통령의 대형사진으로 장식된 차량을 선두로 영구차량과 가족, 경호차량, 친지들을 태운 버스 7대가 병원을 빠져나갔다. 현장에는 조문객 수백명이 고인이 떠나는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빈소 주변에 있던 추모객들은 고인을 태운 차량이 병원을 빠져나간 뒤에도 한참동안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당초 국회의사당 영결식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던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께 검정색 바지정장 차림으로 또 한 번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박 대통령은 차남 현철 씨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내기도 했다. 이날 빈소에는 낮 12시까지 1600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 지난 5일동안 다녀간 누적 조문객 수는 총 3만7300여명이다.운구 행렬은 장례식장을 출발해 광화문→충정로→공덕오거리→마포대교를 거쳐 오후 2시께 국회의사당에 도착해 영결식을 진행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과 친지, 각계 인사 등 7000여명이 참석했다.영결식이 끝난 오후 3시40분께에는 김 전 대통령을 싣은 운구 차량이 상도동 사저와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거쳐 오후 4시께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김 전 대통령이 영면(永眠)으로 가는 마지막 길이다.▣ 상도동 주민들, 차분함 속에서 마지막 길 배웅김영삼 전 대통령이 반평생 넘게 살아온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눈발이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상도동 자택에는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길을 함께 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동네 곳곳에는 조기와 현수막이 내걸려 그의 죽음을 안타까와했다. 관악구 난곡동에 거주하는 최인식(85)씨는 “운구행렬을 보기위해 이날 오전 9시30분에 집을 나섰다”며 “국회 영결식에 가려고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점심식사 후 이곳 상도동 자택으로 왔다”고 말했다.최씨는 “뜻밖의 서거소식을 듣고 놀랐다. 김 전 대통령은 아무도 못한 금융실명제 시행과 하나회 척결 등 우리 마음에 많은 감동을 준 대통령”이라고 회고했다.오후 1시30분 서울대병원을 떠난 김 전 대통령의 운구 차량은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을 마친 후 4시7분께 상도동 사저에 도착했다. 상도동 자택은 김 전 대통령이 1969년부터 46년 동안 지내온 집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며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상도동에 도착하자 집 앞에 있던 시민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삼엄한 경비 속에서 4시10분께 운구차가 사저 앞에 도착하자 김 전 대통령의 장남 은철씨의 아들 김성민 군이 영정 사진을 양손에 꼭 쥐고 하차했다. 김 군은 영정을 들고 생전 고인의 체취가 남아있던 공간 곳곳을 둘러보고 돌아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상도동 주민 윤경수(67·여)씨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지막 가시는 길을 자세히 못봐서 아쉽다. 마음이 표현 못할 정도로 씁쓸하다”고 말했다.그는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셨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년 봄에 개관하는 도서관을 보지 못하고 가신게 너무 아쉽다”고 덧붙였다. 약 6분간 사저에 머문 운구차는 인근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으로 향했다. 내년 3월에 완공되는 이 도서관은 김 전 대통령에 관련된 각종 자료와 서적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도서관 앞에도 김 전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취재진을 포함해 시민 50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들은 시민들이 차도로 나오지 않게 두팔을 벌여 막았다. 이들은 도서관 앞 보도 300m에 길게 늘어서 김 전 대통령을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사저를 떠나 도서관 앞에 도착한 운구 차량은 약 3분간 도서관 앞에 잠시 멈춰선 후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으로 떠났다. 이를 본 한 시민은 멀어져가는 운구차를 보고 “잘 가시오”라고 중얼거리며 김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원했다.▣ 朴대통령, YS 영결식 불참… 서울대병원서 운구차 배웅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지난 다자외교 강행군에 따른 건강악화의 여파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불참했다.대신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다시 방문해 고인의 명복을 빌며 배웅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5분께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김 전 대통령의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해외순방 귀국 직후인 지난 23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조문한 데 이은 두 번째 방문이다.박 대통령은 발인에 앞서 장례식장 밖에서 대기 중인 운구차의 오른편에 서서 대기했다. 박 대통령의 뒤에는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현기환 정무수석 등이 함께 했다.두 손을 모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박 대통령은 도열병이 나타나자 운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이 가까이 오자 목례를 한 뒤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봤다.운구차의 문이 닫히고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나오자 박 대통령은 목례를 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박 대통령은 현철씨의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위로했다. 건강 문제 때문인 듯 피곤한 모습이었고 목소리도 작았다. 현철씨는 “몸도 불편하신데 와주시고 많이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발인을 함께 해준 데 감사의 뜻을 전했다.박 대통령은 운구차가 출발하자 다시 목례했고 장례식장을 벗어날 때까지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바라봤다.유족들은 운구차 뒤를 따라가면서 박 대통령에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찮으신데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인사를 남겼다.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거행된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청와대로 돌아왔다.박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고인을 배웅하는 것으로 영결식 참석을 대신한 것은 지난 해외순방에 따른 감기와 피로누적 때문이다.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영결식 참석과 관련해 대통령 주치의는 ‘고열 등 감기 증상이 있는 상황에서 추운 날씨에 오랫동안 야외에 있으면 곧 있을 해외순방 등에 차질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서 장기간 외부공기 노출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고 전했다.김 수석은 이어 “그러나 박 대통령은 최대한 예우를 표하기 위해 운구차가 출발하기 직전 빈소인 서울대병원을 다시 가서 김 전 대통령과 영결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을 다시 한번 위로하려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독재 투쟁·불굴의 YS, 우리 마음 시원하게 해줘”시민들은 김 전 대통령을 동네 아저씨처럼 소탈하거나 민주화를 위해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인물 등으로 다양하게 기억하며 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민들에게 커피를 나눠주는 자원봉사를 한 최동화(여·72)씨는 “역대 대통령 중 YS를 가장 존경한다”며 “민주화에 헌신하고 기독교인으로서 항상 인자하신 모습을 보였다”고 기억했다. 목발을 짚고 영결식에 참석한 백병수(54) 대한장애인체육회 위원은 “YS 여동생과 친분이 있어 대통령 출마 전부터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며 “정치인답지 않게 동네아저씨처럼 소탈했다”고 회고했다. 백 위원은 “옆집 아저씨처럼 성품이 온화한 분이었고 생전에 장애인에게 관심이 많았다”며 “장애인 단체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보이지 않게 지원했다”고 전했다. 서울 한남동에 사는 정남길(55)씨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이 있기에 대통령이 있고 대통령이 있기에 국민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우리나라 첫 민주주의, 발걸음을 처음 내딛은 역사적인 인물이라서 애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군산에서 온 전모(57)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전두환 군사 독재가 한창이던 시기 군산 월명공원에서 강연한 적이 있는데 군사독재를 비판하며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줬다”며 “불굴의 의지를 갖고 끊임없이 민주화를 염원한 인물로 기억한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6·25 참전 유공자인 김기찬(70)씨는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다 높이 평가하는 대단한 대통령”이라며 “박정희 같이 경제를 살린 대통령도 대단하지만 평화를 사랑한 김영삼 대통령도 대단했다”고 고인을 높이 평가했다. 인터넷에서 영결식 소식을 듣고 찾아온 조모(28)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좌파, 우파도 아닌 중도 보수”라며 “이번 서거를 계기로 우리 국민들이 이제 통합을 하고 화해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한 중년 여성은 묵념 직전 국기에 대한 경례 도중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그는 “외국에서 왔다. 나 있던 데는 여름이었는데 한국은 겨울이네”라며 “우리나라도 좀 잘 풀리겠지. 그런 것을 기도하고 계실 것”이라며 고인을 넋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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