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에겐 손이 곧 눈이 된다. 따뜻한지 미지근한지 차가운지, 혹은 부드러운지 매끄러운지 거친지 간질간질한지. 이들은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본다. 올해로 9회를 맞는 시각장애인 사진전시회 ‘마음으로 보는 세상’. 시각장애인 10명이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서울 곳곳을 누비며 담아낸 사진전이 오는 28일부터 1월5일까지 상명대 예술디자인센터에서 개최된다. 이들은 지난 6개월간 매주 토요일마다 카메라 조작법과 사진이론, 사진 찍는 기술을 배우고 현장 학습을 통해 실력을 길러왔다. 상명대 사진영상미디어학과 학생들이 1대1 멘토로 참가해 매주 사진촬영에 도움을 줬다. 학생들이 피사체의 크기, 색깔, 모양과 빛의 위치, 밝기 등등을 설명해주면 시각장애인들이 프레임을 맞추고 사진을 찍는 형식이다. 학생들의 설명을 듣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지만 ‘찻길이 있고 건너편에 조그만한 건물이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정확한 크기와 방향을 알긴 어렵다. 자동차 소리와 엔진 냄새 등으로 거리와 위치를 추가로 가늠한다. 피사체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만져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하늘거리고 반질반질한 느낌이 들면 사진에도 가볍고 포근한 인상을 반영하려고 멘토에게 노출설정, 화이트밸런스 조정 등을 도와달라 한다.2년째 사진 교실에 참가한다는 저시력 시각장애인 박현정(35·여)씨는 이 과정을 두고 “상상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칭했다.“시각에 문제가 있다보니 처음에는 사진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진이란 게 결국 내 마음 속에서 찾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거더라구요”이번에 멘토로 참가한 상명대 사진영상미디어학과 4학년 정수현(26)씨도 비슷한 말을 건넸다. 정씨는 시각장애인 중 한명이 흰색장갑을 끼고 사진을 찍던 일을 인상깊게 기억했다.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해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인다던 그는 “카메라를 든 손이 눈을 대신하는 것 같아 흰 장갑을 끼고 왔다”고 말했다. 사진에 자신이 보는 세상이 그대로 투영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참가자들은 올해 광복 70년을 맞아 독립기념관, 육군사관학교, 서대문 형무소 등을 특별 방문했다. 이들이 찍은 사진은 대개 한쪽으로 갸우뚱 기울어져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좋은 사진’ 기준과는 동떨어져있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이미지를 곱씹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독립투사들을 고문한 흔적이 남겨진 서대문형무소는 오른쪽으로 넘어질 듯한 각도로 인해 위태로운 긴장감이 느껴지고, 장충공원의 유관순상은 사선으로 치우친 구도때문에 당시 현장에서 느껴질법한 극적인 불안감을 자아낸다.‘사진에서 모든 규칙은 깨져야 한다’고 강조하던 유명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의 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결과물도 남다르지만 이들이 사진을 대하는 자세 역시 일반인들과는 다르다.“일단 예쁜게 있으면 일반인들은 사진기부터 마구 갖다대요.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은 일단 보질 못하니까 대상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면서 조심스레 다가가죠”정씨는 이들과 함께 하면서 사진을 신중하게 찍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변화는 박씨에게도 나타났다.큰 물체 형태만 겨우 파악할 수 있다는 그녀는 제대로 볼 수 없단 사실때문에 일부러 주변을 외면하거나 피하기 일쑤였다. 벚꽃이 피어도, 노을이 예뻐도 ‘어차피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지레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기도 하고, 학교 교목도 새삼 돌아보며 일상을 다시 매만지게 됐다.이 기획을 처음부터 준비한 양종훈 상명대 교수(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가 의도한 바도 이와 마찬가지다. 양 교수는 시각장애인의 문화 예술에 대한 행복추구권에 대해 고민해보고 장애 구분을 넘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내년이면 10회를 맞이하는 사진전. 양 교수는 “특별히 UN 본부에서의 전시도 계획중”이라며 “전 세계에 마음으로 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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