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이 9일 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로 들어왔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정기적으로 연주하는 한국 오케스트라를 향해 공연이 끝난 후가 아닌 시작 전, 상당수 청중이 박수를 보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무엇보다 박수에는 환영의 의미보다 응원과 격려, 그리고 지지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10년 간 서울시향에 몸담은 정명훈(63) 전 예술감독이 떠난 후 약 10일 만에 열린 연주회이자, 올해 첫 정기 연주회인 ‘브루크너 교향곡’ 무대. 독일의 거장 크리스토프 에센바흐(76)가 정 전 감독을 대신해 지휘봉을 든 이날 서울시향 단원들은 2005년 재단법인 출범 이후 정 전 감독과 10년 간 쌓아온 연주력과 내공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집중력을 평소보다 배로 발휘한 듯 치밀한 연주가 돋보였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다목적 공연홀이다. 클래식음악 전용극장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비교해 오케스트라가 들려준 사운드의 완성도를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날 서울시향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훌륭했다. 정 전 감독이 다져놓은 구조적인 사운드가 일품이었다. 특히 2악장의 야생적인 사운드를 일사분란하게 길들이는 듯 절도 있는 연주와 템포의 긴장과 이완이 연속됨에도 흐트러짐이 없는 결단을 높이 살 만했다. ‘브루크너 교향곡 9번’에 앞서 들려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우아했다. 1999년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영재 발굴 프로그램인 ‘소년소녀 협주회’(지휘 장윤성)에서 모차르트 4번 협주곡을 협연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28)이 약 17년 만에 협연자로 나섰다.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투명한 연주가 일품인 최예은은 앙코르에서 들려준 윤이상의 ‘작은 새’처럼 자유로웠다.정 전 감독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시향에게 힘을 보태며 싶다며 빠듯한 스케줄에도 서울시향의 포디엄에 오른 에센바흐는 서울시향의 단단한 연주에 유연함을 더했다. 이번 지휘가 급하게 결정된 터라 7일 오후에 입국한 그는 호텔에 짐도 풀기 전 서울시향 연습실로 가 밤 10시까지 리허설을 했다. 8일 역시 내내 연습실에서 살았고, 공연 당일인 9일 낮에도 단원들과 계속 호흡을 맞췄다. 그에 앞서 서울시향 최수열 부지휘자가 단원들과 연습을 했다. 지난달 말 계약 기간이 끝난 스베를린 루세브 악장을 대신해 웨인 린이 중심을 잡았다.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의 3악장 마지막 음이 10여초 간 공연장에 여운을 남긴 뒤 청중의 기립 박수가 터져나왔고 5분간 지속됐다. 어느 때보다 환호가 넘쳤다. 일부 단원들은 여러 몸짓으로 서울시향의 올해 정기 공연의 포문을 잘 열어준 에센바흐에게 감사를 표했다. 무엇보다 든든한 우군은 시민들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900석 중 무려 2317석이 팔려나갔다. 주로 정기 공연이 열리는 예술의전당 콘서트 기준으로는 매진에 가까운 숫자다. 공연 직전 티켓 교환을 위한 청중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공연이 약 7분 가량 지연되기도 했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서울시향의 다음 정기 연주회인 말러 교향곡 6번(1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말러 스페셜(17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도 꼭 봐야한다는 청중도 있었다. 서울시향의 오랜 팬이라는 티 브랜드 ‘타바론 코리아’의 박종완(64) 회장은 “정명훈 선생이 10년 동안 이뤄놓은 사운드는 무너지지 않는다”며 “오늘 함께 음악을 들은 이들의 감상평이 한결같이 좋다. 이제 시향은 시민들이 후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서울시향이 후원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도 나돌았는데, 한편에서는 이처럼 든든한 우군들이 버티고 있었다. 서울시향은 최 부지휘자와 함께 당분간 다방면으로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조만간 대표이사 자문기구인 ‘지휘자 발굴 위원회’를 구성해 정 전 감독의 후임을 논의할 예정이다. 루세브를 비롯해 올해와 내년 상반기까지 계약이 된, 정 전 감독과 인연으로 합류한 단원들과도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 16, 17일 정기공연 지휘자는 11일께 공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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