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 배우 백성희(91·이어순이)가 8일 오후 11시18분께 서울 연세사랑요양병원 입원 중 노환으로 별세했다.백성희는 17세 때 연습생으로 들어간 빅터무용연구소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빅터가극단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43년 극단 현대극장 단원으로 입단한 후 오로지 연극 한 길 만을 걸어왔다. 특히 1950년 창단한 국립극단의 현존해있는 유일한 창립 단원이자 현역 원로단원이었다.‘작품은 가려서 선택하지만 배역은 가리지 않는다’는 신조 아래 평생 400여편의 연극에서 다양한 역을 맡았다. 현대극장에 입단한 해 ‘봉선화’로 데뷔한 뒤 ‘베니스의 상인’(1964), ‘만선’(1964), ‘무녀도’(1979),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81), ‘강 건너 저편에’(2002) 등이 대표작이다.1972년 국립극단 사상 최초로 시행된 단장 직선제에서 최연소 여성 국립극단 단장으로 선출됐다. 리더십과 행정력을 인정받아 1991년 다시 한 번 국립극단 단장에 추대됐다. 2010년에는 국내 최초로 배우의 이름을 딴 극장인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주인공이 됐다. 이듬해 3월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작으로 백성희와 장민호 두 배우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아 국립극단에서 제작한 창작극 ‘3월의 눈’(작 배삼식·연출 손진책)에 출연했다. 2013년까지 무대 위에 올랐다. ‘3월의 눈’ 재공연에 출연했고, 그해 말 서울 명동예술극장에 오른 연극 ‘바냐아저씨’에 ‘마리아’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2002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동아연극상(1965), 대통령표창(1980), 보관문화훈장(1983),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4), 이해랑연극상(1996), 대한민국예술원상(1999), 은관문화훈장(2010) 등을 받았다.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연기 기술을 거듭 훈련하면서 한국 연극계의 표준를 만든 선구자적인 분”이라며 “국립극단이 창단될 때부터 한번도 국립극단을 떠나지 않은 기둥이고 뿌리”라고 돌아봤다. “사실은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3월의 눈’을 다시 하고 싶다고 말씀했다”며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2004년 ‘백성희 연극인생 60주년’을 기념하는 자전 연극 ‘길’에 함께 출연한 연기단거리패의 대표인 배우 김소희는 “연극배우의 격을 높인 분”이라며 “항상 너무나 맑고 정갈한 모습으로 격조를 지켰다”며 애도했다. 장례는 대한민국 연극인장으로 치러진다. 12일 오전 10시 용산구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영결식을 연다. 이후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손진책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연출로 노제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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