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중요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명예보유자인 강선영 여사는 한국무용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린 선구자로 통한다. 1950년대 강선영고전무용연구소를 세운 고인은 1960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5회 국제민속예술제’에서 공연했다. 무용가뿐 아니라 이생강 등 국악연주자, 안나영 등 영화배우 수십명이 참가했다. 국제행사에서 한국을 대규모로 알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이후 강선영에게 해외공연 러브콜이 잇따랐다. 1965년부터 본격적인 해외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시아는 물론 북·남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등지를 누볐다. 2006년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한국 전통무용을 처음 선보이는 등 한국무용의 세계화에 획을 그었다. 링컨센터 공연에 대한 평이 ‘타임’에 실리기도 했다. 170여개국에서 1000회 이상 공연했다. 한국 무용가 중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이 공연한 기록이다. 일본 오사카(1963), 도쿄(1966) 등에 무용연구소 분교를 설립, 순수 민간차원으로 외교를 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88서울올립픽 홍보사절단으로 일본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1988년 태평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고, 2013년 태평무 명예보유자가 됐다. 특히 1998년에는 고향인 경기 안성에 태평무 전수관을 설립, 전통춤 보급에 힘썼다.  박용옥 태평무 전수관 관장은 “태평무 전수관은 강 선생이 사재를 털어서 세운 곳”이라며 “매주 토요일마다 3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무료 상설공연을 열어오고 있다. 특히 주변에 주한미군 등이 있어 외국인 가족들이 많이 온다. 다문화시대에 전통을 지켜가는 것도 애국의 하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인의 수많은 해외공연에 대해서는 “한류가 유행하기 전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한국 무용을 전파했다”며 “한류의 시초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타고난 재능과 우주적 기운으로 전통춤의 미적 가치 확산에 기여했다”며 “담대한 지도력으로 무용인의 권익과 춤의 사회적 위상 강화에 헌신한 춤계의 대모이자 여장부, 강선영 선생의 별세는 무형문화재 제1세대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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