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하리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머리는 언제나처럼 치켜든 상태였고 표정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그후 한순간 비틀거리더니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간 병사들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허리를 꺾고 뒤로 넘어졌다”(헨리 웨일즈의 증언)1917년 10월 15일 한 아름다운 여성이 총살형 집행대 앞에 섰다. 이중간첩 혐의를 받아온 유명 무희인 마타하리(1876-1917). 당시 처형을 목격한 영국 기자 헨리 웨일즈에 따르면 마타하리는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군인들을 바라본 채 총탄세례를 받았다. 이 비극적인 실존인물을 다룬 뮤지컬 ‘마타하리’가 지난달 29일부터 6월 1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선보이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세계시장을 겨냥해 5년간의 제작 과정을 거쳐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이다. 19세기 말 뉴욕 신문팔이 소년들의 파업을 소재로 한 뮤지컬 ‘뉴시즈’도 15일부터 7월 3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돼 무대에서 역사 속의 매력적 인물과 명장면을 만날 수 있게 됐다.   ▣ 역사 속 마타하리는 어떤 인물?제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이중간첩 활동을 했다며 처형된 마타하리는 가난때문에 16세에 나이차가 많이 나는 장교와 결혼하고, 하녀의 손에 딸이 살해되는 불행을 겪는 인물이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죽고 싶어 무작정 뛰쳐나가 맞닥뜨린 사원에서 알몸으로 춤을 추며 자신의 영혼을 씻고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 후 파리의 물랭루즈에서 고혹적인 춤을 추는 무희가 돼 유럽 고위층 남성들의 혼을 빼놓는다.  하지만 전시라는 미묘한 상황에서 유럽 각국 남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얻은 것 때문에 마타하리는 각국 정부로부터 스파이 의심을 사게 된다. 프랑스 정부의 조사를 받던 중 방에서 당시 주로 범죄에 쓰이던 비밀잉크(그대로는 보이지 않지만 화학적 처치를 가하면 글자가 보이게 하는 잉크)가 발견됐다. 마타하리는 메이크업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지만 수사관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마타하리와 연루된 프랑스 고위 당직자들이 줄줄이 소환되자 상황은 더욱 불리해졌다. 외부의 적과 대치중인 때에 내부의 스캔들은 너무나 치명적이었기에 프랑스는 서둘러 마타하리를 처형함으로써 문제를 봉합했다.1970년대 들어 독일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마타하리가 코드네임 ‘H-21’이라는 독일스파이라는 증거가 속속 발견됐다. 하지만 일부 사학자들은 돈만 받았지 실제로 스파이임무를 수행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 여전히 그가 스파이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안개 자욱한 초원 위 처형대에 선 마타하리를 비추며 시작되는 뮤지컬 역시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있다. 연하의 애인역으로 나오는 아르망도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마타하리에게 첩자역할을 부탁하는 라두 대령은 마타하리의 스파이활동이 확인되지 않았듯이 가상의 인물이다. ▣ 지도자는 16세 애꾸눈 소년“친구여, 동료들이여. 우리가 남자의 심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줄 때다. 우리가 아교처럼 함께 뭉쳐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쟁취할 것이다!”(파업을 주도한 소년인 키드 블링크의 연설) 뮤지컬 ‘뉴시즈’로 옮겨진 역사는 가슴벅차다. 1899년 신문사 사장인 조셉 퓰리처의 신문값 인상에 반대해 ‘뉴시즈’들이 파업을 벌였다. 뉴시즈는19세기말-20세기 초 미국의 거리에서 신문을 팔았던 소년들을 불렀던 말로 이들은 대부분 고아나 부랑아였다. 하지만 지도자인 애꾸눈 소년 키드 블링크(뮤지컬에서는 잭 켈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거대자본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파업의 발단은 언론재벌인 조셉 퓰리처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신문팔이 소년들이 사가는 신문 가격을 올리려 한 것. 이에 반발한 신문팔이 소년들은 수주일간 브루클린 다리 위에서 파업시위를 벌인다. 퓰리처는 나이든 신문팔이들을 고용해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이들은 신문팔이 소년들에 동조해 제안을 거부했고 시민들 역시 파업이 해결되기 전까지 대부분 퓰리처가 발행하는 신문을 사는 것을 자제했다. 키드 블링크의 마음을 울리는 연설 덕에 5000명 이상의 뉴시즈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그 결과 신문 판매량은 3분의 1로 급감했고 퓰리처는 어린 소년들에게 항복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길거리 생활을 하는 최하층 계급인 뉴시즈들의 단결과 승리는 미국에서 디즈니 영화(1992)와 뮤지컬(2011)로 제작됐다. 역사 속 파업을 이끈 애꾸눈 소년이 잘생긴 온주완 등으로 바뀐 것, 당시 상황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뉴시즈와 여기자와의 러브라인이 첨가된 것을 빼고는 한국판 뮤지컬 ‘뉴시즈’는 역사가 보여준 희망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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