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주간 가장 뉴스를 달군 말 중의 하나는 ‘대리’라는 단어일 것이다.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이 맞을 비타민 주사 등을 ‘대리’처방하고, 인사나 정책에까지 관여하는 ‘대리’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서다. 하지만 주체를 잃고 ‘대리노동’을 하거나, ‘대리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대통령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지난해 대학 내 노동의 부조리를 비판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은행나무)로 화제를 모았던 전 ‘지방시’(지방대 시간강사) 김민섭은 최근 펴낸 책 ‘대리사회’(와이즈베리)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의 본질을 간파해 담았다. 지방시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두고 지난 1년간 대리운전으로 일한 그가 운전석과 조수석, 차안과 차밖의 세계를 보며 성찰한 결과물이다.대리 기사는 운전석에 앉지만 차의 주인은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라 창문을 열거나 운전석을 열거나 하는 사소한 행동도 제약된다. 그는 이렇게 ‘행위’와 ‘말’이 제한되면서 ‘사유’까지 통제당하는 경험을 한다. 지방시로서, 한 패스트푸드의 점원으로 일했던 경험에 비정규직인 대리운전의 경험까지 더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는다. ‘기업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노동자의 주체성을 농락한다.(…중략) 그런데 그것은 명백한 위법이나 합법도 아닌,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매장의/학교의 주인처럼 일하라’는 수사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이것은 정말이지 파렴치한 역설이다. 노동자의 주체성을 강탈하는 동시에 그 빈자리에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히는 것이다.(…)나는 이것을 ‘영혼착취’라고 규정하고 싶다’(본문 173쪽) 한밤에 대리운전할 차를 찾아 달려가고 파주로, 원주로, 서울로 운전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한밤에 옷이 땀에 흠뻑 젖은 채 한손에 핸드폰을 쥔 그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대리운전 아저씨’임을 알아본다. 대리운전은 자신을 데려다주고 태우고 올 아내와의 협업으로 발전하고 ‘섬그늘에 굴따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 잠드는 아이처럼 집에서 곤히 잠든 두살배기 아이를 부부는 마음졸이면서 수시로 모니터로 확인한다. 이들의 고단한 노동은 단순히 노동 현장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주체로 서고자 하는 열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던지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모든 개인은 주체와 피주체의 자리를 오가면서 주체가 되기를 욕망하고, 타인에게 순응을 강요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회가 개인에게 보내는 욕망과 그대로 일치한다. 특히 국가는 순응하는 몸을 가진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그러나 (국가의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돼서는 안된다. 자신을 둘러싼 구조와 마주하고, 주체가 돼 사유해야 한다. 그것은 한 개인이 가진 사회적 책무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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