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25년간 위작 논란이 일었던 고(故)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작품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인도의 원소장자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작품을 보유했던 사실도 수사 결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배용원)는 19일 “미인도 소장이력 조사,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 안목 감정 내용 등을 종합한 결과 미인도는 진품으로 판단됐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이 1991년 이래 25년간 지속돼 온 대표적인 미술품 위작 논란 사건인 점을 감안해 미술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고, 사건관계자들을 철저히 조사했다”며 “현 시점에서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감정방법을 통해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천 화백은 지난 1991년 재료, 채색기법 등이 자신의 다른 작품과 다르다며 미인도가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진품이라는 결론을 굽히지 않으면서 갈등은 이어졌다. 또 위조범으로 알려진 권춘식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직접 그렸다고 주장했다가 다시 아니라고 말을 바꾸면서 논란은 커졌다. 논란이 거듭되던 가운데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의 공동변호인단은 지난 5월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49) 관장 등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6명을 사자명예훼손 및 저작권법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했다. 이후 검찰은 권씨의 모작(模作)과 미인도, 천 화백의 진품 등을 놓고 상호 비교하는 과정을 거쳤다. X선·적외선·투과광사진·3D촬영, 디지털·컴퓨터영상분석, 권씨 DNA분석, 필적감정 등 첨단 기법이 동원됐다. 권 씨를 4차례 불러 조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위작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한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고, 수정이나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로 눌러서 긋는 방식)’ 없이 스케치 그대로 ‘분채’ 안료로 채색했다는 주장도 실제 작품 분석 결과와 달랐다. 권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본인이 그린 그림이라고 진술하다가 검찰이 미인도 실물을 공개하자 “내가 그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최초 위조를 주장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별건 수사 과정에서 감형을 받을 목적이었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고소인측, 피고소인측, 미술계 전문가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선정한 교수, 화가, 미술평론가 등 총 9인의 감정위원들의 안목감정도 벌였다. 조사는 ‘미인도’와 천 화백의 진품 12점을 대상으로 개별감정한 뒤 감정서를 제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감정 결과 일부 진품에 비해 전체적인 명암대조(밝기),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위작의견을 낸 전문가가 있었지만 진품 의견을 낸 전문가들이 우세했다. 이들은 ‘석채’ 사용, 두터운 덧칠, 붓터치, 선의 묘사, 밑그림 위에 수정해나간 흔적 등에서 미인도와 진품 사이에 동일한 특징이 나타난다고 봤다. 지난 9월엔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감정단이 입국해 미인도를 감정하기도 했다. 감정단은 ‘입체(3D) 멀티스펙트럼 카메라’ 장비를 이용해 미인도 등 천 화백 작품을 촬영한 뒤 채색 순서, 붓질 방향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를 끝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감정단은 지난달 미인도가 진품일 가능성이 0.00002%라며 해당 작품이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같은 방식을 진품을 두고 다툼이 없는 천 화백의 다른 작품에 대입했을 때 진품 가능성이 4%대에 그치는 점, 전문성을 홍보해 온 단층 분석 방법에 대한 결과가 제시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이를 배척했다. 아울러 검찰은 미인도 위작 논란이 25년째 이어오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소장 이력도 추척했다. 그 결과 그간 미인도의 출처로 알려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인도를 소유했던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에 따르면 천화백은 1977년 정부부처의 중앙정보부 소속 간부에게 미인도 등을 판매했다. 이 간부의 처는 이 중 미인도를 친분이 있던 김 전 중앙정보부장의 처에게 같은해 선물했다. 이후 미인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이듬해인 1980년 정부에 기부채납됐다. 당시 문화공보부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작품을 넘겼고,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돼 왔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국가기록원, 육군본부, 기무사 등의 자료를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 같은 상황 등을 종합해 피고소·고발인 5명을 혐의없음 처분했다. 다만, 사실 관계가 확정되기 이전 미인도가 진품으로 확정됐다고 언론 인터뷰한 정모(59)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미술품 위작의 가장 큰 문제는 제작 및 유통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실효적인 단속방안 및 유통 투명화 방안 마련 등 문화체육관광부 등 유관 기관간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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