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정치인들은 연설문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지,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는지에 대해 주변의 자문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고(속칭 ‘Kitchen cabinet’이라고 합니다), 피청구인이 최순실의 의견을 들은 것도 같은 취지였음”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에 반박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 일부분이다. 덕분에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이라는 말이 시중의 화제가 됐다. 키친 캐비닛은 대통령이 각 분야 전문가를 불러 이야기를 듣는 것을 일컫는 용어다. 그런데 박 대통령 변호인단은 최순실 씨가 ‘키친 캐비닛’에 해당한다고 밝혔다.아연실색할 일이다. 최 씨가 도대체 어떤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통령이 시중의 여론을 듣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또 최씨를 통해서도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그러나 최 씨가 키친 캐비닛이라면 박 대통령이 만난 유일한 사람인 그에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의 자문을 구했다는 말이 된다. 앞뒤가 안맞는다. 또 키친 캐비닛은 어떠한 사적인 이해관계나 정치적 관계가 없는 경우를 지칭한다. 하지만 최 씨의 국정농단 혐의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하다. 구미 선진국 어느 나라 대통령이 키친 캐비닛의 부탁을 듣고 조카가 운영하는 재단에 예산을 지원하고, 딸 친구 아버지 기업을 대기업 총수에게 연결시켜주겠는가. 법적 논리를 떠나 국민 정서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이밖에도 박 대통령의 잘못은 1%에 불과하다, 탄핵은 최순실의 잘못을 박 대통령에게 전가한 연좌제 같다는 식의 변호인단 다른 답변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을 1%로 규정한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거니와 1%는 잘못해도 된다는 건지 이해가 안간다.최씨 사건과 연좌제는 맥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박 대통령이 없었다면 최 씨가 국정농단을 할 수 있었을까. 박 대통령의 영향력 없이 최씨가 인사에 개입하고 예산을 주무르고 기업의 후원금을 챙길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여기에 연좌제를 갖다붙이는 것은 견강부회에 다름 아니다.박 대통령은 3차례에 걸쳐 대국민사과를 했다. 스스로 잘못도 시인하며 울먹이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변호인 대리인단을 통해 모든 탄핵 사유를 부인했다. 도대체 어떤 게 박 대통령의 진짜 모습인지도 이젠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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