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이들에 관한 책은 에세이건 소설이건 간에 비장하고 무거운 것이 특징이다. 갑작스러운 사고사라면 그 애통함 때문에, 병사라면 병에 동반되는 고통때문에 밝은 분위기를 품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파우스토 브리치의 데뷔 소설인 ‘100일 동안의 행복’(민음사)은 시종일관 톡톡 튄다. ‘100일 동안의…’는 사랑하는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체육 교사 루치오가 갑자기 말기 암을 진단받고 난 후 스스로 조력 자살을 선택해 100일 후에 죽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작품은 주인공의 죽음을 강렬한 대전제 삼아 박력있게 시작한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암이 전이된 상태인 주인공은 100일을 고통없이 삶을 버틸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100일간의 긴 휴가를 자신에게 주기로 한다. 죽음을 향해 마지막 걸음마를 떼듯이 100에서 하나씩 빼가며 0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은 과감하고 유쾌하다. 작품 속 주인공은 한 번의 외도로 사이가 멀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주인공을 지켜주는 아내, 말썽꾸러기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 ‘삼총사’라 불리는 죽마고우 친구들에 대해 차근차근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듯 그린다. 그런 따뜻한 시선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암에게도 해당한다.‘통계에 의하면 세상에서 사망의 제일 큰 원인이 그것이다. 결국 우리와 함께 사는 친구인 셈이다. 문제의 살인범은 성이 없고 별자리를 연상시키는 재미없고 짧은 이름을 가졌다. 바로 게자리를 뜻하기도 하는 ‘캔서’, 암이다. (중략)나는 늘 암을 이탈리아어로 ‘친구 프리츠’라고 불렀다. 암을 좀 더 친숙하고 덜 공격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18쪽) 저자인 브리치는 국립 이탈리아 영화학교를 졸업한 재기 넘치는 영화 감독으로, 데뷔작 ‘시험 전날 밤’이 ‘다비드 디 도나텔로’ 상을 포함해 여러 상을 받으며 주목받았으며 영화 ‘애프터 러브’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코미디 멜로물에 정통한 그는 이 소설에서도 이탈리아 특유의 가족애를 유머와 존엄을 잃지 않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그리고 있다.(파우스토 브리치 지음·이승수 옮김·민음사·각권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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